조선시대에도 한여름에 얼음을 먹을 수 있었다. 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서울의 동빙고나 서빙고 같은 빙고(氷庫), 즉 얼음창고에 보관했다가 여름에 꺼내 먹은 것이다. 땅굴에 보관해도 여름이 되면 절반 이상이 사라지고 없었다. 여름의 얼음은 사치품이나 마찬가지였고, 왕이 직접 챙길 정도로 중요한 물품이었다. 왕실 제사 때나 궁궐 음식을 만들 때 쓰고, 반빙(頒氷)이라 해서 정 2품 이상 관리들에게 하사하기도 했다. 여름철 얼음은 금세 녹을 터인데 굴에서 꺼내 어떻게 옮겼는지 궁금하다. 일반 가정에서는 음식 그릇을 두레박줄에 묶어 깊은 우물 속에 담가 부패를 막았다.
사시사철 음식을 시원하게 보관하는 냉장고를 개발하려는 노력은 서양에서 17세기부터 있었다. 여러 발명가들이 특허를 받은 냉장고를 선보였다. 그러나 실용성이 떨어지고 너무 비싸 상용화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냉장고는 냉매가 기화하면서 열을 흡수하는 원리를 이용한다. 1862년 최초의 기계식 냉장고를 만들어 판매한 사람은 '냉장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해리슨이다.
해리슨의 냉장고는 맥주업체와 육가공업체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냉매가 유독가스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스가 누출돼 사망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미국 듀퐁이 덜 위험한 프레온 냉매를 발견해 냉장고를 제조한 것은 1930년대 들어서였다. 하지만 프레온도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드러나 2010년부터 사용이 금지됐다.
일부 부유층이 수입해서 쓰던 냉장고를 국산화해 최초의 제품을 내놓은 기업은 금성사(현 LG전자)였다. 1965년에 나온 GR-120 모델이다. GR-120은 품명에서 보이는 대로 저장용량이 120L인 작은 크기였다(조선일보 1965년 7월 22일자·사진). 구조도 냉장실과 냉동실이 구분되지 않은 일체형이었다. 일본 히타치와 기술제휴를 했는데, 그전에 미군부대에서 유출된 냉동기를 뜯어보고 구조를 익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실물이 남아 있어 2013년 등록문화재 제560호로 지정됐다.
1965년 최초 시판가격은 8만600원이었고 3년 후에는 12만원으로 뛴 것으로 기사에서 확인된다. 그때 회사원 초임이 1만원 안팎이고 고위 공무원 월급이 몇 만원, 작은 공무원 아파트 분양가가 칠팔십만원대였다. 냉장고 한대 값이 요즘 가치로 치면 수천만원이었던 셈인데, 가정에서는 도저히 구입하기 어려운 가격이었다. 1968년 무렵 전국 냉장고 보급대수는 약 5만대로 600가구당 한대쯤 있었다고 한다. TV보다 더 귀했다. 그 시절 농촌에서는 어느 집에서 냉장고를 들여놓으면 이웃 음식을 보관해 주기도 했고, 심지어 아이들이 냉장고를 견학하듯이 구경하러 다녔다는 기사가 있다. 떡을 돌리듯이 이웃에 얼음을 나눠주기도 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진다.
1958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전자제품 기업인 금성사는 이듬해 최초의 국산 라디오 'A-501'을 출시한 데 이어 최초의 기록을 써 내려갔다. 1960년에는 최초의 선풍기 'D-301'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선풍기가 전기를 많이 먹는다는 이유로 생산을 중단시켰다. 1966년에는 한국 최초의 흑백TV가 나왔다. 출시가는 6만3510원, 냉장고보다는 낮았지만 역시 비싼 값이었다.
국내 최초의 에어컨도 1968년 금성사가 생산한 'GA-111'로 창문형이다. 출시가격이 17만5000원인데 값도 값이지만, 별도로 전력장치를 설치해야 한다고 해서 일반 가정에서는 언감생심이었다. 1969년에는 수동세탁기인 '백조 세탁기(WP-181)'가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김치냉장고도 금성사가 1984년에 가장 먼저 내놓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때문인지 판매량이 많지 않았다. 김치냉장고가 일반화된 것은 1995년 당시 만도에서 '딤채'를 내놓은 후였다. 금성사를 제치고 우리나라 최초의 컬러TV를 만든 곳은 옛 아남전자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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