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성 경제부 부국장·세종본부장
총선을 보름 앞두고 문득 든 의문 하나. 윤석열 대통령의 계속된 민생토론회에도 민심의 반응은 왜 미지근할까. 토론회가 선거개입이라는 정치적 논란은 일단 논외로 하자. 그런 면도 있다는 지적은 많지만 매년 초 진행했던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확대했고 정책수요자인 국민, 기업도 참여했다. 국정 연장으로 봐도 될 부분도 제법 있다. 물가, 재건축, 반도체, 상속세 개편 등의 주제들은 경제 현안이었고 부처 칸막이를 깬 정책제시는 신선했다. 서울, 부산, 인천, 광주, 원주 등 전국을 돌았다. 생방송으로도 다뤘다.
민심의 척도는 여럿 있지만 선거 땐 지지율이다. 주요 여론조사기관 조사 결과, 윤 대통령과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지지율은 하락세다. 야당의 '관권선거 프레임'공격에도 3개월가량 전국을 돌며 '일반 국민의 생활과 생계'인 민생을 다룬 것 치곤 나쁜 성적표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노선 연장, 국가장학금 수혜 대상 150만명으로 확대, 노인인구 10% 이상 일자리 제공 추진 등은 호응도가 높은 정책이었지만 먹혀들진 않았다.
물론 이종섭 주호주 대사 임명·귀국 논란과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이 정권심판론으로 확산돼 지지율을 갉아먹은 측면은 확실히 있다. 그럼에도 경제성적표를 꼼꼼히 봐야 한다. 지지율 흐름의 단초는 드러난 정치이슈가 아닌 경제문제에 있을 수 있어서다. 사무직(화이트칼라)보다 제조업 근로자(블루칼라)와 자영업자가 경기에 더 민감하다. 그리고 이들은 보수 지지세가 화이트칼라보다 더 강하다. 한국갤럽의 정례조사에서 2022년 6월과 2024년 3월(2주 기준)의 직업별 대통령 지지율 변화를 보면 자영업은 53%에서 30%, 기능·노무·서비스는 46%에서 34%, 사무관리는 38%에서 29%로 각각 하락했다.
물가는 잡히지 않고 가계소득과 소비가 곤두박질 치는 경기상황이 지지율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소비 위축은 수치로 확인된다. 민간소비증가율이 2020년 -2.3%, 2021년 1.7%, 2022년 1.9%로 회복세였지만 2023년 0.9%로 반토막 났다. 근로자 평균임금총액은 매년 증가하다 지난해 관련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처음으로 1.1% 감소했다. 상당수 블루칼라와 자영업자는 민주당을 이탈,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찍었지만 1.4%라는 저성장 후폭풍이 거세지자 1년 만에 등을 돌렸다고 유추할 수 있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말은 우리나라 선거에서도 빈번하게 인용되는 미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1992년 캠페인 문구다. 먹고 사는 문제가 유권자의 최대 관심사라는 걸 확인해 준 사례다. 클린턴 대통령 선례로 보면 경제에 집중한 민생토론회가 민심을 자극해야 한다. 역대급 불황 속에서 민생경제를 화두로 내세운 방향도 적절하다. 그렇지만 정책 타깃 조정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지율이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자영업자들은 툭 하면 민생인데, "삶이 왜 이렇게 팍팍한가"라고 되묻고 있다. 토론회에서 나온 재개발·재건축 완화,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은 자산효과를 겨냥했지만 경제적 이득을 보는 대상은 소수 가계다. 내수침체는 중소 자영업자나 블루칼라를 덮쳤는데 정부는 자산가에게만 집중하겠다고 하는 형국이다. 민생 없는 민생토론회였던 셈이다.
민생엔 정부, 여야가 없지만 진정성이 관건이다.'우리는 국민들의 삶에 관심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관용어처럼 쓰는 '민생'으론 힘들다. 정치이슈로 지지율 혜택을 본 야당도 마찬가지다.
예민한 민심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최근 내놓은 '전 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을 민생정책으로 볼지는 미지수다. '금사과'를 장바구니에 담지 못하면서 느끼는 평범한 이웃들의 분노를 해소해 주지 못하는 민생 정책은 공허한 메아리다. 지원금 퍼주고 세금 깎아주는 원시적인 민생정책의 혁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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