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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가치 34년만의 최저치 추락, 금리인상도 효과 없어

엔화 가치 34년만의 최저치 추락, 금리인상도 효과 없어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도쿄=김경민 특파원】 달러에 대한 엔화가치가 34년만의 최저치로 추락했다. 미일간 금리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당분간 엔저는 지속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엔·달러 환율은 27일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한 때 151.97엔까지 올라 1990년 7월 이후 약 34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엔·달러 환율은 이날 151.5엔 안팎에서 등락을 거듭했으나 오전 10시 이후 151.7엔대로 급등했고, 이어 2022년 10월에 기록했던 151.94엔을 넘어섰다.

일본은행은 지난 19일 금리를 올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했다. 사실상 돈 풀기 정책을 중단한 조치로 엔화 가치가 오를 것으로 기대됐으나 일반적인 시장 예상과 달리 오히려 하락한 것이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 통상 해당 화폐 가치가 상승하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본은행이 '완화적' 금융 환경에 방점을 둔데다 지난 20일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를 동결하면서 엔 매도가 가속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정부는 이례적인 엔화 약세에 최근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며 시장을 견제했지만 엔화 가치 하락에는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해제했지만 조기에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후퇴했다"며 "엔화 매도에 대한 안심감이 커지면서 엔화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또 "일본은행 내에서 금융 완화 축소에 적극적인 편으로 분류되는 다무라 나오키 심의위원이 정책 변경에 신중한 자세를 보이면서 엔화 매도, 달러 매입 움직임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이날 다무라 심의위원은 한 강연에서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금융정책의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면서 "이례적인 대규모 금융완화를 능숙하게 해 나가려면 앞으로 통화정책의 고삐를 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스즈키 슌이치 재무상은 엔화 약세와 관련해 "과도한 움직임에는 모든 수단을 배제하지 않고 단호한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2022년 일본 정부가 시장 개입에 나섰을 때도 '단호한 조치'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점을 근거로 이번에도 정부가 엔화 매입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퍼지고 있다.

일본 환율 당국은 2022년 세 차례에 걸쳐 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9조2000억엔(약 81조7000억원)을 투입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은행이 금리를 높였어도 여전히 절대적 금리 수준이 낮아 미국처럼 금리가 높은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준의 추가 금리인상이 오는 6월로 점쳐지는 가운데 그보다 앞선 일본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업계에선 엔화가 달러 당 152엔을 돌파하면 엔화 하락폭이 더욱 가속화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트레이더들이 대규모 달러-엔 매도 포지션을 커버하려면 추가 엔화 매도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에서다.

한편 일본은행은 지난 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2007년 2월 이후 17년 만에 금리를 인상했다. 일본은행은 기존 -0.1%로 설정됐던 단기 정책금리를 0∼0.1%로 올렸다. 또한 대규모 금융완화를 위해 추진해 왔던 또 다른 축인 장단기금리조작(YCC)을 폐지하고, 상장지수펀드(ETF)와 부동산투자신탁(REIT) 매입도 중단하기로 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