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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숙 칼럼]테무는 알고 있다

막강 생산력에 빅데이터
역발상으로 뚫은 신시장
세계 반중국 대오도 흔들

[최진숙 칼럼]테무는 알고 있다
최진숙 논설위원
중국의 돤융핑 부부가오 그룹 회장은 은둔의 경영자로 유명하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했던 오포, 비보의 창업자였고 IT 투자업계 거물로 통했다. 지금은 미국으로 생활 터전을 옮겼지만 여전히 중국 창업 교사로 막후에서 활동한다. 그는 2006년 워런 버핏과의 점심을 62만달러에 낙찰받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돤융핑은 그 자리에 26살의 앳된 청년을 데려갔다. 그가 바로 테무의 모기업 중국 핀둬둬 창업자 황정(44)이다.

버핏과의 식사에서 황은 '어느 주식에 투자하면 좋은지' 같은 질문은 일절 하지 않았다. 황금은 왜 비싼지, 비싼 주식들은 왜 비싼지 물었다. 사물의 표면이 아닌 본질을 파악할 것, 상식의 힘을 기를 것. 황이 버핏과 만난 뒤 새긴 교훈이었다고 한다.(중국 테크기업의 모든 것, 2022년)

흙수저 출신 황은 항저우 외곽에서 자랐다. 수학에 엄청난 재능을 보였고 저장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으며 2002년 졸업 후 미국 유학을 갔다. 굴지의 IT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으나 이를 뿌리치고 선택한 곳이 신생 업체 구글이었다. 3년을 구글 엔지니어로 지낸 뒤 2007년 중국에 돌아왔을 때 대륙은 알리바바가 전자상거래 붐을 일으키고 있었다. 구글 입사 때 받은 스톡옵션을 밑천으로 전자상거래 대행업체와 게임회사를 차렸고, 그후 노하우를 집대성해 2015년 창업한 회사가 핀둬둬다.

핀둬둬의 진격은 순식간이었다. 중국의 싸구려 이미지를 벗고 고급화를 추구하던 것이 당시 주류 흐름이었다. 선두업체들의 성장전략도 거기에 있었다. 황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들이 보지 못한 내륙의 6억명 저소득 구매층이다. 승자독식에 밀려 상위 판매자에 들지 못해 도태된 상점들을 끌어모아 초저가 상품의 보급 진지를 구축했다.

개혁과 개방 이후 서구의 명품 OEM으로 단련된 인력들은 차고 넘쳤다. 덩달아 공장을 지방 소도시로 옮겨 가격 거품을 빼는 공급자가 급증했다. 가난한 이들의 저가 생필품이 초반 물량의 주를 이뤘으나 서서히 각양각색의 소비재로 품목이 뻗어나간다. 소비자를 유인하는 방식도 기존과 달랐다. 상품 기획자가 인공지능(AI)이었다. 빅데이터에 기반한 개별 취향 상품 추천은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다. 핀둬둬 앱은 소비자들의 놀이터로 변모해갔다. 난공불락으로 보였던 알리바바, 징둥의 쌍두마차 시대는 그렇게 핀둬둬 등장 3년 만에 깨졌다.

테무는 핀둬둬의 해외 버전이다. 핀둬둬는 테무 본사를 아예 미국 보스턴에 차려 서류상 미국 기업으로 만들었다. 서방의 대중국 포위망을 뚫기 위한 방책이었다. 2022년 9월 미국에 깃발을 꽂은 이후 반년 만에 아마존, 월마트를 위협하는 업계 3위(온라인 방문자수)가 됐다. 테무는 최저가 입찰로 직매입한 뒤 바로 해외 소비자에게 파는 구조다. 아직은 천문학적 광고비와 수익성 낮은 물류비로 적자를 면치 못하지만 빠르면 내년에 흑자전환할 것으로 전망하는 곳(HSBC)도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건 테무의 다음 행보다. 테무의 플랫폼은 유저의 소상한 취향을 알고 있다. 이들의 관심과 변심, 진심을 추적하는 일에 사활을 걸 것이다. 테무는 이제 한국을 정조준했다. 미국과 유럽을 돌아 지난해 7월 일본에 이어 국내에 상륙했다. 앞서 진출한 알리익스프레스보다 점유율은 낮지만 장악 속도는 더 빠르다.

돌아보면 황이 핀둬둬로 신세계 영토 확장을 꾀하던 시기 우리는 '마트 발목 잡는 법'을 제정해 전통시장 보호책으로 썼다. 온라인 시장 급성장기에 마트는 변화에 올라타지 못했고 전통시장도 지리멸렬했다. 국내 유통 맏형 이마트는 지난해 첫 적자로 충격을 줬다. 쿠팡은 비로소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자금력에서 중국 앱에 크게 밀린다.
정부는 부랴부랴 짝퉁 엄중단속, 국내 기업 역차별 해소책을 들고 나왔으나 만시지탄이다. 테무보다 앞서 움직일 것, 아니면 철저히 다르게 파고들 것. 여기에 길이 있을 것이다. 가격 앞에 애국심은 없다.

jins@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