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에 따른 의대교육 부실 우려에 기증된 해부용 시신(카데바)을 의대 간 공유하고 부족하면 수입도 고려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사후 의대에 시신 기증을 서약한 가족들이 "고귀한 뜻으로 기증된 시신을 마치 도구로 보는 것"이라며 항의문을 냈다. (이미지= 연세대 의대 졸업생 페이스북 캡처) 2024.03.29. photo@newsis.com.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에 따른 의대교육 부실 우려에 기증된 해부용 시신(카데바)을 의대 간 공유하고 부족하면 수입도 고려하겠다고 밝히자, 의대에 시신 기증을 서약한 가족들이 "고귀한 뜻으로 기증된 시신을 마치 도구로 보는 것"이라며 항의문을 냈다.
29일 의료계에 따르면 연세대 의대 출신인 맹호영씨는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맹호영 외 5명' 명의로 "스스로 혹은 부모님의 몸을 사후 연세대학교 의과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 목적으로 사용하기를 서약한 본인 혹은 가족"이라면서 "(카데바 부족 문제는)의대증원이라는 문제의 극히 일부분이지만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의 발언을 좌시할 수 없어 항의문을 올리게 됐다"고 밝혔다.
앞서 박 차관은 지난 21일 브리핑을 통해 "우리나라는 1년에 기증되는 카데바 수가 약 1200구 정도인데 실제 의대에서 활용되고 있는 카데바 수는 800구 정도이며 400구가 남아 다른 학교에 공유하고 부족하면 수입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교육·연구 목적의 해부에 필요한 시신의 수급은 '시체 해부 및 보존 등에 관한 법률(시체 해부법)'의 적용을 받고 있다. 보통 해부에 사용되는 시신 기증은 고인이 의학 발전을 위해 생전 기증 의사를 밝히면 기증을 원하는 의료기관을 지정하고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이뤄진다. 이후 시신을 인계받은 의대생, 전공의 임상 교수 등의 연구와 교육에 쓰여진다.
이와 관련해 맹씨는 "너무도 잘못된 개념에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 할 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라면서 "우선 박민수 차관이나 정책 관련 공직자들께서는 한번이라도 기증된 시신을 이용하는 해부나 연구 과정을 시작하는 첫 시간이나 마지막 시간, 혹은 추모식을 참관, 아니 간접적으로 현장에 대해 설명이라도 들어 보셨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해부학 실습 외에도 많은 연구를 하는데 필요한 시신이지만, 특히 모든 의대생은 본과에서 첫 학년에 반드시 해부학을 이수해야만 다른 과목을 들을 자격이 주어진다"면서 "해부학 실습실에서는 환한 웃음이나 농담도, 음식이나 음료도 금지되고 이를 어길 때는 심각한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각자의 사연은 다르지만, 기증해주신 분들과 이를 허락해주시는 가족들 없이 의사가 되기 위해 받는 교육의 첫 단추를 꿸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부학은 단순한 우리 몸의 구조나 명칭이 아닌 생명이 떠난 신체를 마주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된다"면서 "또 400구의 시신이 남는다는 발언은 시신 처리와 교육 준비 과정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일 뿐 아니라 대중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표현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또 "해부학은 갓 시작한 의대생들에게 생명이 떠난 고인의 몸을 통해 배우며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존중과 두려움을 배우는 매우 중요한 과정인 것을 아시는 분이라면 마치 어떤 물건의 재고가 있어 나눌 수 있듯 “남는” 혹은 “공유” 라는 표현은 하실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카데바를 의대 간 공유해도 부족한 경우 수입하겠다는 정부 입장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전형과 변이를 배울 기회를 우선하기보다는 단순히 수가 부족하면 “수입”해 숫자를 채우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몰이해에 대한 실망과 함께 이런 분들이 과연 의학교육과 수련 정책에 얼마나 신중하실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암담할 뿐"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본인이나 가족은 단 한 분이라도 의학교육을 위해 시신 기증 서약은 하셨는지 알고 싶다"면서 "실습 후의 시신이 피부, 근육, 신경, 혈관, 뼈, 두개골 부터 발끝까지 어느 것 하나 성하게 남는 것이 없는 줄 가장 잘 알면서도 우리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가치 아래 모인 연세대 의대를 신뢰하고 존중해 시신 기증을 약속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아는 다른 시신 기증자 가족분들도 대개는 '나를 치료해준 고마운 병원'과 '나의 자식을 의사로 만들어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준 고마운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한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씀하신다"면서 "전국의 모든 의과대학이 다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기증된 시신이 부족해 고민하는 학교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이를 해결 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신 기증자와 그 가족을 존중하고 감사히 여기는 문화가 먼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귀한 뜻으로 기증된 시신을 마치 도구로 보는 듯한 표현을 하는 사람이나 정부 부처는 의학교육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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