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도체 장비 업체, 지난달부터 화웨이 특허로 새 노광장비 개발 추진
네덜란드 첨단 EUV 없어도 기존 DUV 장비로 5nm 반도체 생산 가능
수율 낮고 비용 늘어, 안정적인 양산은 힘들어
美, 추가 제재 압박...중국행 DUV 수출마저 통제
韓-대만 등 경쟁 업체들은 2nm 시대 준비, 中 경쟁력 의문
지난 2022년 9월 16일 중국 장쑤성 난통에서 촬영된 반도체 공장.A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미국과 서방 국가들의 제재로 첨단 반도체 장비를 구하기 어려운 중국이 결국 기존 설비를 최대한 활용해 첨단 반도체를 만들 계획이다. 중국 기업들은 기술 개량을 통해 서방의 장비가 없어도 5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의 첨단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안정적으로 양산하려면 미국의 추가 제재와 생산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中, 자체 기술로 장비 한계 극복 주장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일 보도에서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 최대 반도체 장비 업체인 나우라테크놀러지(북방화창)가 지난달부터 중국 최대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노광장비 연구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화웨이는 지난달 광둥성 선전의 반도체 장비 업체 사이캐리어와 협력해 5nm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자가 정렬 4중 패턴화(SAQP)’ 기술을 개발했다며 중국 국가지식재산권국에 특허를 신청했다. 화웨이는 특허 관련 서류에서 자신들의 특허가 있다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없이 심자외선(DUV) 노광장비로 5nm 공정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도체는 일반적으로 웨이퍼라고 불리는 얇은 실리콘 덩어리에 제작사가 설계한 회로를 그리는 과정(노광) 이후, 그림을 따라 깎고 덮는 등 추가 처리를 거쳐 탄생한다. 회로를 가늘게 새길수록 반도체의 면적이 줄어들며 1장의 웨이퍼에서 얻을 수 있는 양이 늘어나 원가가 감소한다. 면적이 작아지면 작동에 필요한 전력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정해진 공간에 더 많이 쌓을 수 있어 성능 향상에도 유리하다. 이러다보니 주요 제조사들마다 회로를 가늘게 새기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 연구 개발을 하고 있다.
지난 2010년에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이 공개한 EUV는 첨단 반도체 시장에 혁신을 불러왔다. 앞서 DUV로 10nm 수준의 회로를 새겼던 제조사들은 EUV의 등장으로 2010년대 후반부터 7nm 공정을 시도했으며 대만 TSMC의 경우 지난 2020년에 세계 최초로 5nm 공정 양산을 시작했다.
반도체 강국을 꿈꾸던 중국도 EUV를 구해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전 세계에서 EUV를 독점 생산하는 ASML에 주문이 밀린 데다 미국의 방해에 부딪쳤다. 과거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2018년부터 중국 반도체 산업을 옥죄기 위해 네덜란드를 상대로 적극적인 로비를 벌였다.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 2020년부터 ASML이 중국에 EUV를 팔지 못하게 막았다. ASML은 대신 중국에 상대적으로 구형인 DUV 장비를 팔았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는 2022년 10월 중국 반도체 업계에 대한 미국산 장비 수출 규제를 발표하면서 ASML과 반도체 장비 매출 3위 업체인 일본의 도쿄일렉트론에도 규제 동참을 요구했다.
지난해 11월 20일 네덜란드 노르트브라반트주 펠트호번의 ASML 사옥에서 조립 기술자들이 반도체 제작을 위한 '하이 NA 극자외선(EUV)' 장비 옆을 걸어가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 의문
사실 SAQP 기술의 기본 개념은 이전에도 있었다. 해당 기술은 간단히 말해 웨이퍼에 회로를 그린 다음 깎는 등 후처리 과정을 여러 번 추가해 정밀도를 높이는 공법이다. 미 반도체 업체 인텔은 2010년대 당시 EUV가 없더라도 DUV로 SAQP 공정을 이용하면 7nm 공정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방식으로 7nm 반도체를 만들 경우 생산은 가능하지만 공정 숫자와 추가 비용이 급증하고 생산성이 급감하여 양산에 불리하다. 인텔은 결국 7nm 반도체 양산에 실패하여 2018년에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계에서 철수했다. 인텔은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 지원을 약속하자 지난 2021년 파운드리 재진입을 선언했다. 동시에 업계 최초로 ASML의 최신 기종이자 1대당 5000억원에 달하는 '하이 NA EUV'를 6대나 확보했다. 인텔은 1.8nm 공정의 반도체를 만들어 TSMC와 삼성전자같은 경쟁자를 제치겠다고 공언했다.
중국 또한 EUV 확보가 어려워지자 인텔의 방식을 참고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화웨이는 지난해 8월 고급 스마트폰인 '메이트 60 프로'를 출시했다. 캐나다 반도체 컨설팅업체 테크인사이트는 지난해 9월 보고서에서 해당 제품에 화웨이가 직접 설계한 반도체인 '기린 9000S'가 탑재되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린 9000S가 중국 파운드리 중신궈지(SMIC)의 7nm 공정 기술로 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미 하원에서는 SMIC가 미국의 제재를 어기고 EUV를 확보했는지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당시 외신들은 SMIC가 미국의 제재를 뚫고 EUV를 확보했는지, 혹은 DUV를 이용해 비효율적으로 7nm 반도체를 만드는 지 불분명하다며 생산량에 제한이 있다고 내다봤다.
만약 중국이 SAQP 기술을 개량해 5nm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안정적으로 생산하려면 다른 난관을 넘어야 한다. 바이든 정부는 최근 서방 기업들에게 EUV 뿐만 아니라 DUV 마저 중국에 팔지 말라고 압박중이다. ASML은 지난 1월 1일 성명을 내고 “네덜란드 정부가 최근 DUV 시스템 출하 허가를 부분 취소했다”며 중국으로 가야할 DUV 장비 3대의 수출을 중단했다. 이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베이징을 방문한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에게 반도체 장비 수출 재개를 압박했다.
한편 삼성전자와 TSMC는 5nm 반도체를 넘어 2년 안에 2nm 반도체 양산을 추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2nm 이하 양산을 위해서는 하이 NA EUV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중국 업체들이 ASML의 장비 없이 2nm 공정까지 도전할 수 있을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지난해 9월 25일 중국 베이징의 화웨이 매장에서 고객들이 '메이트 60 프로' 스마트폰을 구경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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