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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츠업 실리콘밸리] 검은 가죽 재킷과 CEO

[왓츠업 실리콘밸리] 검은 가죽 재킷과 CEO
홍창기 실리콘밸리특파원
검은색 가죽재킷은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트레이드 마크다. 황 CEO는 언제나 어느 장소에서나 항상 검은 가죽재킷을 입고 등장한다. 사계절 내내 가죽재킷을 입는다는 그는 한여름에도 가죽재킷을 입고 출근한다고 한다. 그도 사람인지라 날씨가 더울 때 가죽재킷을 잠시 옆에 살짝 벗어놓는다는 전언이다. 황 CEO가 1년 내내 검은 가죽재킷을 입는 까닭은 의외로 간단하다. 검은색 가죽재킷이 자신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황 CEO의 아내 역시 가죽재킷이 그에게 잘 어울린다고 얘기했다고 전해진다. 황 CEO가 가죽재킷을 입는 가장 큰 까닭은 여기에 있다. 옷을 고르는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검은 가죽재킷은 황 CEO가 빨리 출근해 남들보다 더 빨리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만드는 원천인 셈이다.

황 CEO 이외에도 독특한 개성의 옷차림을 가진 미국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CEO들은 또 있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플랫폼의 마크 저커버그 CEO가 그렇다. 그도 한때 회색 티셔츠만 고집했다. 그는 자신의 옷장에 걸린 회색 티셔츠들을 찍어 지난 2016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사진에는 9벌의 회색 반팔 티셔츠와 5벌의 짙은 회색 후드티가 걸려 있었다. 해당 사진과 더불어 저커버그는 "뭘 입어야 할까요. 결정을 못했어요"라고 적었다. 모두 같은 옷인데 말이다. 저커버그는 같은 옷을 입는 이유에 대해 옷을 선택하는 시간을 줄여 본업에 집중하기 위함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황 CEO가 검은 가죽재킷을 입는 이유와 비슷한 취지다.

오늘날의 애플을 있게 해준 고 스티브 잡스 창업자도 그를 대표하는 옷차림이 있다. 바로 검은색 터틀넥에 청바지다. 잡스는 중요한 발표를 할 때 늘 그 옷차림이었다. 지난 2001년 아이팟이라는 신제품을 발표할 때도, 2007년 아이폰을 세상에 공개했을 때도 잡스는 터틀넥에 청바지를 입었다. 잡스의 전기책 '스티브 잡스'를 보면 잡스가 터틀넥에 청바지를 입는 이유가 나온다. 잡스가 일상적으로 편리하고 특징적 스타일을 표현할 수 있는, 검은색 터틀넥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일본의 유명 디자이너에게 터틀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덕분에 잡스는 100벌 넘는 검은색 터틀넥을 갖게 됐고, 그 검은색 터틀넥은 잡스의 상징이 됐다.

최근 검은 가죽재킷을 입은 황 CEO를 가까이 볼 일이 있었다.

엔비디아 연례개발자컨퍼런스 'GTC24'에 초대받으면서다. 이 자리에서 검은 재킷만 입는 황 CEO의 내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엔비디아의 가속컴퓨팅플랫폼 호퍼(Hopper) 아키텍처의 후속기술인 최신형 인공지능(AI) 플랫폼 '블랙웰'과 차세대 AI 칩 'GB200'을 막힘없이 2시간 내내 소개하는 그의 내공은 보통의 CEO 것이 아니었다. 그는 엔비디아의 추론 전용서비스 NIM, 디지털 트윈, 로봇까지 차례로 공개하며 자신이 이끌고 있는 AI 분야의 실력을 뽐냈다. 다음 날 전 세계 미디어를 대상으로 한 질의응답 시간에도 검은 재킷을 입고 등장한 황 CEO는 전날과 같은 내공을 바탕으로 실력을 드러냈다.

최근 황 CEO와 저커버그 CEO가 만나 서로의 옷을 바꿔 입은 사진이 화제가 됐다. 저커버그 CEO가 입은 검은 재킷은 어색했고, 황 CEO가 입은 저커버그의 황색 무스탕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어색하지 않은 점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현존하는 최고의 실력과 내공을 갖춘 CEO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특히 황 CEO의 경우 AI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엔비디아를 최고의 기업으로 이끌었다. 그의 검은 가죽재킷은 AI시대를 맞아 엔비디아가 패권을 쥐게 한 강력한 전투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가 언제까지 검은 재킷을 입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옷을 고수하는 CEO가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력과 내공을 두루 갖춘 CEO 말이다.

theveryfirst@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