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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국정쇄신의 키워드는 '책임'이다

총선 민심은 與 쇄신 요구
무책임한 불통 이미지 벗고
국민의 뜻에 따라 변화해야

[노동일 칼럼] 국정쇄신의 키워드는 '책임'이다
노동일 주필
4·10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사퇴했다. 한 위원장은 11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뜻을 준엄하게 받아들이고 저부터 깊이 반성한다"며 "선거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총선 패배에 대통령실과 공동 책임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이고, 그 책임은 저에게 있다"는 말도 했다. 한 위원장과 동시에 이관섭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비롯한 고위 참모진 전원과 한덕수 국무총리도 사의를 표명했다. 국정쇄신 움직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여당은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 합쳐 108석에 그쳤다. 범야권은 모두 합쳐 192석. 대통령 탄핵, 거부권 무력화에 미치지 못할 뿐 국회 운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엄격히 따지면 선거 결과는 한 위원장 등이 책임져야 할 일은 아니다. '정권 심판'이라는 태풍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윤석열 대통령이다. 선거 과정에서 한 위원장의 잘못도 있지만 그가 아니었으면 여당은 100석 미만으로 떨어졌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그렇다고 "내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며 자리를 유지하려 했다면 한 위원장은 더 큰 낭패를 보았을 것이다.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이 시점에서의 당연한 정무적 판단이다.

운동권 심판, 이·조 심판이 전혀 먹히지 않을 정도로 정권 심판론이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에게 '불통'과 '독단'으로 비치는 국정운영 방식이 태풍의 씨앗이 되었다고 본다. 특히 '책임'이라는 키워드가 그 중심에 있다. 막스 베버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책임윤리'의 부재가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책임 공방을 들 수 있다. 이 장관은 사건 발생 초기 "경찰 등 인력배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발언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윤 대통령은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말로 장관 문책을 거부했다. 과거 대형 참사 등이 생기면 주무장관 문책 등으로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는 게 통례였다. 하지만 현 정권은 그런 대응을 '후진적'이라고 본 것이다. 필요한 법적 책임을 물은 후 이 장관을 퇴임시켰다면 민심 차원에서 사건의 마무리로 여길 수 있었다. '이태원 특검법' 공방으로 여전히 시끄럽지도 않았을 것이다.

2023년 7월 발생한 해병대원 사망사건도 마찬가지. 당시 해병대 1사단 소속 채모 상병(추서)은 실종자 수색작전 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사건 발생 초기 해병대 1사단장은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를 표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하지만 '윗선'으로부터 수사에 제동이 걸리면서 진상규명 대신 정치적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장관과 마찬가지로 해병대 사단장이 장병 한 사람의 안위에 직접 책임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런 경우 지휘책임을 지는 게 통상적이다. 그런 관행을 거부하고, 공수처 수사대상인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함으로써 총선 국면에서 풍파를 일으킨 것은 정무감각의 부재라고밖에 볼 수 없다. 당시 적절한 '지휘책임'을 묻고 일을 마무리했더라면 '순직 해병 특검법' 등 소모적 공방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국민은 언제나 옳다."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윤 대통령이 내놓은 발언이다. "민심은 언제나 옳다." 11일 한 위원장이 토로한 말이다. 윤 대통령과 여당이 국민은, 민심은 언제나 옳다는 말을 실천에 옮겼더라면 총선 참패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무적 책임을 요구하는 민심을 '후진적'이라고 생각하는 한 대통령과 여당은 국민과 겉돌 수밖에 없다. 그때부터 국민의 생각과 결을 같이해왔다면 한꺼번에 책임을 묻는 민심의 쓰나미가 덮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사는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지만 정치는 정무적 책임을 지는 것이다. 대통령 책상 앞의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라는 경구도 이를 말한다. 국정쇄신과 국정운영 방향 전환에 있어 가장 깊이 새겨야 할 내용이다.

dinoh786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