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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오토파' 주인과 '복덩이' 대리인

[기자수첩] '오토파' 주인과 '복덩이' 대리인
박문수 금융부
한때 치킨집 사장님과 편의점주들을 자주 만났다. 이들의 꿈은 '오토 매장'을 손에 쥐는 것. '척하면 척'인 일꾼에게 모든 일을 위임하고 쉬고 싶다고 했다. 상품, 원자재 발주부터 매장 관리까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해줄 '복덩이 알바생'을 기대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주인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굴러가는 매장을 업계에서는 '오토'라고 부른다.

어느 날 '오토' 편의점 3곳을 운영하는 사장님 A가 제보라며 전화했다. 믿었던 '복덩이' 알바생 B가 배신했다는 것. B는 코로나 유행 전부터 A의 편의점에서 일해왔다. 월급은 딱 최저임금만큼 받았다. 코로나 유행으로 편의점에도 배달주문이 밀려왔다. 매출은 급증했지만 B의 월급은 그대로였다. 재고가 없는 어떤 상품의 주문이 들어왔다. B는 주문을 강제 취소했다. 복덩이 B도 여느 알바생처럼 매출과 노동강도는 정비례하지만, 월급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취소를 했더라니까." A는 B가 최소 수천건을 취소했고, 이는 '배임'이라고 하소연했다.

A는 B에게 매장 운영을 위임했다. 만약 B가 매장의 명성과 매출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A는 잘못이 없을까. 이 같은 상황을 경제학에서는 주인·대리인 문제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스톡옵션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대리인인 B가 매출을 끌어올렸을 때 얻는 이익(대리인 비용)을 늘려주는 것으로 동기를 부여한다.

은행원 C는 고액자산가 D를 관리하는 프라이빗뱅커다. D는 10년 넘게 약 10억원을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해 왔다. D는 자산을 '오토'로 해달라고 자주 C에게 요구했다. 일종의 위임이다. ELS의 특성상 해지 후 재가입이 유리할 때마다 C는 D를 불렀다.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사인하면 됩니다." D는 "맨날 부르지 말고 사인 좀 대신 해줘"라고 말했다.

투자자 D에게 C는 복덩이 PB였다. 하라는 대로 했더니 수익이 쏠쏠했다. ELS 사태가 불거진 뒤 C는 불안하다. 오토파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대신 사인한 서류가 수백장이다. C도 'KPI'라는 인센티브가 없었다면 범법행위인 대리서명을 하지 않았을 테다. 인센티브만으로는 주인·대리인 딜레마를 해결할 수 없다. 애시당초 은행도 H지수의 이 같은 폭락을 예상하지 못했다.
D도 긴 시간 손실을 봤다면, C를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은행권의 자율배상이 시작됐다. '오토파' 투자자가 실수도 조금은 인정하길 기대해 본다.

mj@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