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베이징특파원·대기자
"18위안(3430원) 맞아요?" 베이징에 온 지 1주일 만에 서류를 퀵서비스로 보내려다 가격에 놀랐다. 베이징 내 배달이지만, 이 가격으로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류를 받으러 온 배달원한테 18위안이 맞냐고 쓸데없는 질문을 던졌다. 비용은 배달원이 오기 전 앱으로 결제했으니, 굳이 그에게 물을 일은 아니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서류가 접수됐다는 문자가 휴대폰에 들어와 있었다.
베이징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커머스 중독'에 빠졌다. 매번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알리바바의 타오바오나 징둥 등의 앱을 터치해 이런저런 물건들을 주문하는 중독증이 중증이 됐다.
소소한 생필품부터 각종 가전제품에 꽤 부피 있는 가구까지 들여놓다가 보니 좁은 집이 꽉 차버렸다. 심한 플루에 걸려 고생하던 지난겨울, 심야에도 약 배달이 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이런저런 식당 음식을 집에서 시켜 먹던 음식 전문 배달 앱 '메이투안'이 약 배달도 된다는 사실을 이때 알았다. 24시간 아무때나.
1만원도 안 되는 바지 하나 주문하는데, 키와 옆 모습 등을 휴대폰으로 찍어서 올려놓으니 치수가 재어져서 판매처 시스템과 연동이 됐다. 미국에서 단번에 9억회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의류시장을 석권한 광둥성 기반의 통신판매 앱 '쉬인'의 성공이 떠올랐다.
하이난다오산 과일 바구니가 주문 사흘 만에 문 앞에 도착했고 9.8위안(1867원)짜리 운동복 바지, 3.20위안(610원)짜리 플라스틱 정리함, 15.50위안(3000원)짜리 내의 등이 광둥성 등의 제조지를 떠나 주문 며칠 만에 문 앞에 착착 도착했다.
한반도의 45배나 되는 중국 땅 곳곳에서 물건이 오가는 그 배송 속도와 정확성, 가격에 기가 막혔다. 10위안도 안 되는 물건들이 서울~부산의 3~4배 거리에서 어떻게 배송비 없이 배달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인한테 물었더니 "같은 의문을 가졌던 경제학자 장하성 전임 주중 한국대사도 그 해답을 얻지 못한 채 귀국했다"며 웃기만 했다. 배송된 상품 가격에 놀라고, 그 배송시스템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결제 앱 '즈푸바오'(알리페이)에는 결제 내역과 배송 현황이 일목요연하게 나왔다. 몇 시에 물건이 출발했고, 어느 곳을 거쳐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언제 도착한다는 내용이다. '7일 내 이유 없는 반품 가능'이란 조건까지 붙어 있다.
금융과 정보기술(IT)의 결합은 중국을 모바일 결제 시스템의 '핀테크-토피아'로 만들어 놓았다. '현금 들고 다니는 사람이 없어 소매치기가 퇴출됐다'는 말이 농담 아닌 사실이 됐다. 그 위에서 거대한 배송시스템을 실현시켰다.
이 같은 배송시스템 뒤에는 철도, 고속도로를 거미줄처럼 연결해 놓은 인프라와 제조업 및 공급망 등의 성취가 있다. 거기에 IT벤처들의 '정글 경쟁주의' 속의 무한도전이 있고, 당국의 비전과 지속적이고 일관된 정책지원 등의 생태계가 있었다.
저가 배송에 정신이 팔려 '저가 제조국의 나라'라는 선입견에 붙들려 있을 때 중국은 전기자동차(EV), 동력 배터리, 태양광 등 녹색산업을 앞세워 지구촌 시장을 흔들어댔다. 나아가 '신질생산력' '고품질 발전' 등의 용어를 앞세우며 양자컴퓨터, 인공지능(AI) 등에서 기술 돌파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의 도전도 옛 소련처럼 국력 소모로 이어질 것"이란 비아냥이 없지 않지만, 대중과 유리됐던 옛 소련의 기술발전 경로와 중국의 상황은 같지 않다. "중국의 EV는 지속적인 기술혁신과 생산 및 공급망 개선, 시장경쟁을 통해 발전해 왔다"는 지난 7일 왕원타오 상무부장의 유럽 순방 중 발언에는 경쟁력 전반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 있다. 기술력의 돌파와 품질의 도약을 통해 기존의 기술발전 패턴의 판을 뒤엎겠다는 중국. '시진핑의 승부수'는 우리에게 전방위적 도전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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