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의심 사고 원인 소비자가 입증.. 현행 '제조물 책임법'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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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왜 이렇게까지 소비자가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정말 마음이 무너집니다."
지난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해 국내 첫 재연 시험이 진행됐다.
급발진 실증 시험, 국내 첫 사례
당시 강릉시 홍제동에서 60대 A씨가 손자 도현 군을 태우고 SUV를 운전하던 중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도현 군이 사망했다.
사고 뒤 사고기록장치를 분석한 국과수는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최대치로 밟았다'고 결론을 냈다. '운전자 과실'이란 뜻이다.
하지만 경찰은 국과수가 실제 엔진을 작동해 검사한 게 아니기 때문에 운전자 과실 근거로 쓰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도현 군의 가족은 자동차의 두뇌에 해당하는 전자제어장치 (ECU)에 결함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19일 '사고 현장에서의 가속페달 작동 시험' 감정이 같은 장소, 같은 조건의 차량으로 진행됐다.
같은 연식 자동차로 사고 당시 상황과 비슷하게 조건을 바꿔가며 네 차례 주행했다.
A씨 차량의 사고기록장치(EDR) 마지막 5초 동안 기록에는 시속 110km였던 게 116km까지 증가한 걸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날 시험에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더니 140km까지 속도가 올라갔다.
2시간 동안 이뤄진 시험에서 '페달 오조작 가능성'이 낮음을 시사하는 결과가 나온 것.
무엇보다 시험에 든 비용과 도로 통제 협조를 구하는 일은 모두 A씨 측이 부담했다.
급발진 의심 사고 원인을 소비자가 입증해야만 하는 현행 '제조물 책임법' 때문이다.
도현 군 父, 도현이법 제정 촉구
도현 군의 아버지이자 A씨의 아들인 이상훈씨는 연합뉴스를 통해 "이 도로를 한 번만이라도 달려본 분들은 페달 오조작으로 달릴 수 없는 도로라는 걸 잘 안다"고 말했다.
그는 "가능성과 추론을 통해서 결론을 낸 국과수와 달리 이번 감정 결과를 토대로 페달 오조작이 아님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거라고 확신한다"고 기대했다.
또 "오늘로 도현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지 501일째"라며 "도현이가 마지막으로 달렸을 이 도로를 다시 보면서 정말 가슴이 무너지고, 소비자가 이렇게까지 무과실을 입증해야 하는지 화도 났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국회 국민청원을 통해 도현이법(제조물 책임법 일부법률개정안) 제정 환경이 만들어졌음에도 제조사 눈치를 보고, 산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21대 국회에서 제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이씨는 "21대 국회가 마지막으로 유종의 미를 거둘 기회가 남아 있으니 도현이법을 통과시켜달라"며 "21대가 하지 않는다면 22대에서 다시 한번 청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씨 가족은 지난해 2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사고 관련 글을 올렸다. 이에 5만 명이 동의하면서 도현이법 제정 논의를 위한 발판이 마련됐으나 21대 국회의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운명에 놓여있다.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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