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에 수술 취소·연기 반복
응급병원 못찾아 사망사고 나기도
의대교수 사직서 25일부터 효력
환자단체 "현장 남아달라" 호소
#. 서울 강서구에 사는 이모씨(69)는 건강 검진 중 심장에 문제가 있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심장 스탠스 시술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듣고 서울 강서구 한 대학병원에서 진행하기로 예약을 마쳤다. 의료파업으로 혹시나 예약도 못 잡지 않을까 걱정한 것과 달리 예약은 이달 말로 잡혔다. 그렇게 시술 날짜만 기다리던 이씨는 최근 병원이 발송한 문자에 크게 당황했다. 문자는 '의료파업으로 인해 예약이 밀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시술은 오는 6월 초중순으로 미뤄지게 됐다. 이씨는 "진료 당시에 시술을 빨리 잡자고 해서 날을 잡았는데, 이제 와서는 미뤄도 괜찮다고 한다"며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봐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2개월이 넘어가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일선 전공의들은 지난 2월 20일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대하며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의료 서비스 부족 사태가 장기화 하면서 수술이 지연되거나 환자가 진료 거부 당하는 사태도 늘고 있다. 오는 25일부터 의대 교수들의 사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피해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 일상이 된 응급실 뺑뺑이
22일 만난 뇌수막염 환자인 채모씨(35)는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가 지난 12일에야 겨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채씨는 지난 2월 17일 진료 당시 치료를 위해 곰팡이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 하며 이를 위해 뇌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고 안내를 받았다. 문제가 터진 것은 전공의의 집단사직이 터지면서다. 뇌를 열어보는 수술에 가까운 검사인 탓에 입원 날짜를 알려주겠다던 병원 측이 두 달 동안 입원에 대한 안내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채씨는 "발작 당시에도 새벽 4시에 구급차를 탔는데 응급실 뺑뺑이를 돌아 1시간만에 응급실에 도착했다"고 토로했다.
지난 두달동안 수술이 미뤄지는 일은 일상처럼 반복됐다. 직장은 고모씨(36)는 "어머니가 지난달 고관절 수술 예정이었는데 두차례나 밀렸다"며 "현재 어머니가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어서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의사들이 환자를 생각하는 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의료 공백 여파가 사망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달 31일 오후 4시 9분께 경남 김해 대동면에서 밭일을 하던 60대 A씨는 가슴에 통증을 느껴 119에 신고했다. 당시 소방당국은 경남지역 등에 있는 병원 6곳에 10번가량 연락을 했지만, 의료진 부족 등을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A씨는 당일 오후 5시 반이 가까워진 시각에야 부산의 한 2차 병원으로 옮겨진 뒤 각종 검사를 거쳐 대동맥박리 진단을 받았다. 이에 긴급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을 30분가량 알아본 끝에 부산의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같은 날 오후 10시 수술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숨졌다.
■ 의대 교수까지 사직 가능성
단순 시민 불편을 넘어 사망과 같은 피해까지 나오지만 아직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는 않는다. 더구나 오는 25일부터 의대 교수들의 사직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우려되는 상황이다.
앞서 의대 교수들은 의대 정원 확대 등 정부의 의료개혁 정책에 반대하며 지난달 25일부터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 의사를 밝히고 1개월이 지나면 사직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민법 조항에 따라 이달 25일부터 실제로 사직하는 교수들이 생길 수 있다.
이날 환자단체에서는 교수들에게 현장에 남아달라고 호소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오는 25일부터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이 현실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두달간의 의료공백 장기화 사태 속에서 어렵게 적응하며 치료받고 있는 중증·희귀난치성질환 환자들의 투병 의지를 꺾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노유정 김동규 강명연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