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당시 'E.T' 신문 광고(왼쪽)와 영화 포스터
[파이낸셜뉴스] “앞에서도 뒤에서도 옆에서도 머리 위에서도 들리는! 360도 완전 입체 음향 효과의 놀라운 돌비 스테레오!”
남자는 신문 광고를 훑으며 방금 선물 받은 ‘이티’ 영화표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아무래도 상영 시간까지 빠듯했다. 망설이다가 결국 택시를 타고 퇴근했다.
“이티 잠바 입을 거야!” 집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이 더위에 잠바를 입겠다며 떼쓰고 있었다. 아내는 진을 다 뺀 눈치였다. 이러다 영화 시작할라. 남자 말에 그제야 아이들은 옷을 입었다.
“비싸게 택시를 왜 타? 그냥 보내.” 남자가 택시를 잡자 아내가 말렸다. 비싼 영화표를 버릴 순 없잖아. 아내는 더 말리지 않았다. 실은 남자가 더 망설였다. 공짜 표 때문에 택시를 또 타야 하나.
“내가 엄마랑 앉을 거야.” 좌석을 찾자마자 막내는 잽싸게 아내 무릎에 앉았다. 큰아이는 남자 무릎에 앉았다. 그러고 보면 아이들에게 첫 좌석은 E열 7번 같은 게 아니었다. ‘무릎과 무릎’이 첫 좌석이었고 명당자리였다.
“극장에서 보면 선전도 재밌어.” 시내 양식집 극장 광고를 보며 아내가 말했다. 소리가 커서 더 그런가? 여기 입체 음향이래, 남자는 신문 광고 문구를 아내에게 전했다. 애국가가 나오고, 영화가 시작됐다.
“형아야, 이티는 왜 나쁜 놈들이랑 안 싸워?” 아이들은 그게 불만이었다. 외계인이 나오는데 자전거만 탄다니. 큰아이가 훗날 (감독) 스필버그에게 그날의 냉혹한 평을 전하자, 그는 “쏘리”하며 웃었다. 사실 남자도 아이들처럼 별 감흥이 없었다. 그래도 아내가 재밌었다니, 그걸로 됐다.
“토마토 냉면 맛있다.” 남자는 가족을 데리고 시장 골목 식당에 들렀다. 극장 광고의 그 양식집 돈까스를 사주고 싶었는데 너무 늦어져 그렇게 됐다. 아이들은 토마토가 얹어진 냉면을 맛있게 먹었다.
남자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다. 그날 영화 같은 사건은 없었다. 그저 시시한 어떤 날이었다. 그러면서 후속편도 있다.
후속편 주인공은 그 남자의 큰아이다. 큰아이에겐 그날부터 극장이 점점 더 특별하지 않은 공간이 됐다. 대신 일상의 공간이 됐다. 친구들과 ‘로보캅’을 재개봉관에서 봤고, 애인과 ‘어벤져스’를 연인석에서 봤고, 쿠션에 앉힌 아이의 옆자리에서 ‘미니특공대’를 봤다. 아이에게 ‘엘사’ 드레스를 입혀 ‘겨울왕국’을 함께 보기도 했다.
큰아이는 그 남자처럼 아빠가 됐지만, 그 남자와 달리 극장 시간에 쫓기지도 않는다. ‘영화표’ 대신 ‘영화예매권 번호’를 선물 받는다. 스마트폰으로 시간과 좌석을 선택한다(1). 극장도 집 근처라 걸어서 간다. 그러니 택시 탈 일도 없다.
①가족 관객의 예매 방법: 모바일 64%, PC 13%
다시 말하지만, 극장이 그 남자의 큰아이에겐, 그리고 큰아이의 가족에게도 특별하지 않다. 극장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주엔 ‘쿵푸팬더4’를 보러 갔고, 다음 주엔 어린이날이니까 또 간다(2)(3).
②가족 관객의 극장 연간 편수 10~12회(2022년도 조사) ③가족 관객 41% > 20대 관객 27%(2개년 평균)
그 남자의 큰아이는 지금 연휴 계획을 세운다.
어린이날엔 극장이 주말보다 두 배는 더 붐비겠지?(4)(5) 차라리 연휴 마지막 날 갈까?(6)
④올해 토·일요일 평균 관객 111만 명(2024년 4월 기준) ⑤어린이날 평균 관객 130만 명, 해당년 일요일의 2배(2개년 평균) ⑥3일 연휴시 3일째 관객, 1일째의 1.5배(20개년 평균)
‘코엑스’로 가면 되겠다. ‘코엑스’ 안에 들어가서, ‘스타벅스’에서 기다렸다가, ‘메가박스 돌비시네마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고, ‘뽀모도로’에서 파스타를 먹고 집으로...
그런데 뭐 보지? “아빠, 이 영화 어때?” 유튜브를 보며 아이가 어떤 영화를 추천한다. 둘이 한참 이야기하지만 부질없다. 어차피 아내가 결정할 테니(7).
⑦가족 관객의 영화 정보 습득 경로는 가족·친구 33%, 유튜브 23%(2022년 조사)
김형호 영화산업분석가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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