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재 정보미디어부장 산업부문장
10년 전, 2014년 중국 베이징에 특파원으로 부임한 기자는 중국의 정보기술(IT) 역량에 놀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이 IT강국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에 일상화되지 않았던 휴대폰을 이용해 QR코드로 결제하는 '위챗'을 비롯해 카카오택시와 같은 형태의 중국 최대 차량 호출앱 '디디추싱',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알리바바' 등을 중국인들은 이미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14억 인구가 매일 이용하는 알리바바의 위상은 대단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최대 쇼핑 할인행사인 '광군제'가 열리는 11월 11일 새벽 0시를 손꼽아 기다렸다. 연중 최저가격으로 각종 상품을 판매했기 때문이다. 당시 몇 분 만에 판매액이 100억위안(약 1조900억원)을 돌파하느냐가 관심일 정도였다. 알리바바가 100억위안을 돌파하는 데 걸린 시간은 2014년에 37분이었지만 다음 해에는 12분으로 단축됐다.
중국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중국 이커머스업체들은 내수시장에 집중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미중 패권경쟁 등으로 성장률이 하락하고 내수시장도 둔화되면서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알리바바는 최근 전 세계 어디든 1시간 내에 상품을 배송할 수 있는 '특급배송'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알리바바를 모기업으로 둔 알리익스프레스가 올해부터 3년간 11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한국 시장에 투자하겠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우선 334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해 자본금을 374억원으로 늘렸는데 국내 물류센터 구축에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알리가 정부에 제출한 투자계획서에도 2억달러(약 2600억원)를 투자해 연내 18만㎡ 규모의 통합물류센터를 구축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축구장 25개와 맞먹는 면적으로 단일시설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알리는 인천과 가까운 중국 산둥성에 물류센터가 있어 한국의 서해안 쪽에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국내 물류뿐만 아니라 인천공항을 이용, 해외물류 배달에도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물류센터가 구축되면 알리의 상품 배송기간이 크게 단축되면서 신선상품 등 품목이 늘고 국내 시장 점유율도 높아질 것이다. 알리의 올해 1·4분기 국내 결제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164% 급증한 8196억원으로 국내 4위, 월간활성이용자수(MAU)도 지난달 694만명으로 3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7월 한국에 진출한 테무도 8개월 만에 MAU 636만명으로 4위로 급성장했다. 이에 정부 관련 부처에서 불공정거래행위 및 부정 수입물품 실태조사, 개인정보보호법 준수 촉구 등에 나서고 있지만 실효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해외 이커머스 업체를 제재할 명확한 법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2월부터 유럽연합(EU)이 발효한 디지털서비스법(DSA) 등과 같은 실질적 규제법안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됐다. EU가 중국의 패션 플랫폼 쉬인을 추가하면서 이 법을 적용받는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VLOP)은 총 23개로 늘었는데, 이들 업체가 민감한 개인정보 데이터를 활용하거나 미성년자를 겨냥한 '타깃형 광고', 유해제품 등을 판매할 경우 연매출의 6%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중국 이커머스의 파상공세는 국내 영세한 제조·유통업 기반을 공멸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현재 알테쉬(알리·테무·쉬인)에서 각종 생활용품, 패션의류 등이 헐값에 불티나게 판매되면서 관련 국내 영세업체들은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당장은 적자를 감수하면서 이용자 수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국내 기반이 붕괴된 뒤 가격을 인상하면 때는 늦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더 이상 범해서는 안 된다.
hjkim@fnnews.com 김홍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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