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생활경제부장, 부국장
이른바 '알테쉬'로 불리는 중국 이커머스의 습격으로 전 세계가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통을 비롯한 산업계 전반에서 아우성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부는 대책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허둥대고 있다.
의류, 화장품, 공산품 등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는 알테쉬의 최대 무기는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가격경쟁력이다. 엄청난 자본력을 앞세운 초저가 마케팅에 "10개를 사서 한두 개만 건져도 이득"이라며 국내 소비자 상당수는 이미 마음을 내줬다. 가품, 유해물질 논란에도 거의 공짜 같은 가격 앞에서 무너진 것이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지난 3월 국내 이용자를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알리가 887만명, 테무는 829만명으로 각각 2위와 3위에 올랐다. 11번가와 G마켓은 이미 제쳤다. 쿠팡의 뒷모습도 이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상공인, 중소기업은 이미 초토화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 결과 최근 해외직구로 피해를 본 기업은 34.7%에 달했다. 피해 내용도 직구제품 재판매(40.0%), 지식재산권 침해(34.1%) 등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현행법상 국내 사업자가 해외에서 제품을 수입하려면 품목당 수백만원에 달하는 KC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해외사업자는 일부 유아용품, 전기용품 등을 제외하면 KC인증 의무가 없다. 지난 2018년 관련법을 개정해 직구, 구매대행, 병행수입 등은 KC인증 의무를 면제했기 때문이다. 관세 8%와 부가세 10%도 안 낸다.
소비자 피해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작년 한국소비자연맹에 접수된 C커머스(중국 이커머스) 관련 가품 등 불만 접수건수는 465건으로 전년 대비 5배나 증가했다. 위해성도 문제다. 얼마 전에는 C커머스에서 판매하는 귀걸이, 목걸이, 반지 등을 조사한 결과 96개 제품에서 많게는 기준치의 수백배에 달하는 발암물질이 검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알테쉬의 침공은 지금부터가 진짜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지난해 10월 한국 제품 판매채널 'K-베뉴'를 선보였다.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애경, CJ제일제당 등 한국 업체가 대거 입점을 시작했다. 당분간 입점수수료와 판매수수료 면제 혜택을 준다고 하면서 참여기업은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알리는 또 2632억원을 투입해 한국 내에 축구장 25개 규모의 통합물류센터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초저가 짝퉁 제품으로 한국 상륙에 성공한 C커머스가 이제 고품질의 국내 제품까지 조달하며 한국시장 장악에 나선 것이다. 섣불리 볼 일이 아니라는 게 이 때문이다.
국내 유통시장과 관련 산업계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우선 국내 중소기업들은 플랫폼으로서 슈퍼갑 위치인 알테쉬에 종속돼 협상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통상적으로 유통 플랫폼에 입점하기 위해 일정 수량을 미리 생산해야 하는데 중국산 초저가 혹은 짝퉁 제품과 경쟁을 하다가 안 팔리면 순식간에 도산을 맞을 수도 있다.
국내 신선식품 입점은 더 걱정이다. 국내 유통 플랫폼과 경쟁을 위해 가격 상한선을 맞춰놓고 계약을 밀어붙일 게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협상력이 전혀 없는 국내 농가의 피해는 언급 안해도 뻔한 일이다.
상황이 이처럼 급박한데 우리 정부는 지금 뭘하고 있을까.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대리인지정제도 의무화를, 관세청은 가품과 위해품 검사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불법유통, 부당광고를 점검하겠다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조직 내에 C커머스 전담팀을 꾸리겠다고 한다. 온도차가 너무 크지 않은가. C커머스는 이미 국내시장 상륙에 성공한 후 국내 유통 플랫폼과 연관산업 장악을 위해 2차 침공에 나섰는데 정부는 아직도 작년 짝퉁 논란 버전에 머물러 있다. 대통령실과 국무총리실은 아예 뒷짐이다. 부처별 대책을 주문하고 조율할 컨트롤타워조차 없다가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에 맡겨버렸다.
아직 C커머스의 1차 침공 단계에 머물고 있는 미국, 유럽 등 다른 나라는 어떨까. 프랑스는 중국업체에 판매가의 50%의 부담금을 부과하는 '패스트 패션법'을 추진 중이며, EU는 짝퉁 제품 등 위법성 조사에 착수했다.
미국은 초저가 물품 유통 허점을 보완해 무관세 혜택을 없앴다. 태국도 중국의 저가 수입품에 부가세 면제조항 폐지를 추진 중이다.
유감이지만 우리 정부의 수준이 이 정도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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