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6일(현지시간) 엘리제궁에서 3자 회담을 마친 뒤 궁을 나서고 있다. AFP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이석우 특파원】유럽연합(EU) 대표가 프랑스를 국빈 방문중인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의 면전에서 과잉 생산 및 저가 수출 문제를 빠른 시일 안에 시정하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EU 행정부의 수장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3자 회담에서 "경쟁이 공정하고 왜곡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라며 시 주석에게 이 같이 요구했다고 AFP 통신 등이 전했다.
미국의 과잉생산 등과 관련한 대중 압박에 이은 것으로 중국의 과잉 생산 및 초저가 수출 등 통상 문제에 대한 압박과 국제사회의 공동 보조가 더 강해지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는 이 문제를 빠른 시일 안에 해결해 성과를 보여달라고 요구, EU의 중국 제품에 대한 고관세 적용 등 각종 무역 제재 가능성을 숨기지 않았다.
EU 집행위원장, 구조적 과잉생산 해결 촉구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파리 엘리제궁에서 1시간 넘게 이어진 회담 후 기자회견을 열어 "중국 정부에 구조적 과잉 생산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했다"라고 확인했다. 이어 "중국은 전기차를 비롯해 제조업 부문에 대대적인 지원을 계속하는데 세계는 중국의 과잉 생산을 흡수할 수 없다"며 "공정 무역을 위해 서로의 시장에 대한 접근도 상호주의적이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그는 회담 시작 전 모두 발언에서도 "유럽과 중국은 상당한 규모의 경제 관계를 맺고 있으나 이런 관계는 국가 주도의 과잉 생산, 불평등한 시장 접근 등으로 위협받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공개 발언에서 "유럽과 중국 간 무역에서 모두를 위한 공정한 규칙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시진핑 주석은 비공개 회담에서 "소위 '중국의 과잉 생산 능력 문제'는 비교 우위 관점이나 글로벌 수요에 비춰 볼 때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전했다.
시 주석은 아울러 "EU가 중국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발전시키고 긍정적인 대중 정책을 채택하길 희망한다"라며 "대화와 협의를 통해 경제·무역 마찰을 적절히 해결하고 서로의 정당한 우려를 수용하는 게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시 주석, 과잉 생산은 글로벌 관점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반박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탁자 왼쪽부터)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6일(현지시간) 엘리제궁에 모여 무역 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관해 회담을 시작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중국과 EU는 전기차·태양광 패널·풍력터빈 등의 보조금, 저가 판매 문제로 잇따라 마찰을 빚고 있다. EU 집행위는 최근 몇 달 사이 중국을 겨냥해 다수의 불공정 경쟁, 무역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EU 집행위는 시 주석의 유럽 순방을 앞두고 지난달 24일에도 중국 의료기기 분야를 상대로 EU 국제 조달규정에 따른 직권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앞서 EU는 지난달 3일부터 중국 태양광 관련 기업에 대해, 지난해 10월에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각각 불공정 보조금 조사에 착수했다. 또, 스페인, 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의 풍력발전단지 개발에 참여하는 중국 기업들에 대해서도 관련 상황을 조사 중이다.
이날 3자 회담의 또 다른 주요 의제였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EU와 중국 간 입장차가 드러났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회담 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 전쟁을 종식하기 위해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모든 영향력을 사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또한 러시아에 치명적인 장비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중국의 약속에 대해서도 논의했다"면서 "중국이 군사적 용도로 전용할 수 있는 이중 용도 상품의 러시아 공급을 줄이기 위해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U 집행위원장, 중국 대러 군사용 전용 가능 상품 이전에 더 주의해야 지적
이에 시 주석은 "중국은 우크라이나 위기를 조성하지도 않았고 당사자도 아니다"라며 "중국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과 건설적인 역할은 국제사회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다"라고 응수했다.
아울러 "중국은 그동안 평화를 위한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 왔다"며 "중국은 관련 당사자들과 계속 소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시진핑 주석은 마크롱 대통령과 가진 양자 정상회담에서 녹색 저탄소 산업분야의 협력 등을 제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대해선 프랑스, 국제사회와 함께 위기에서 벗어날 합리적인 방안을 찾을 용의가 있다고 표명했다.
서로 간의 견해차에도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회담에서 "솔직하고 개방적인 교류와 토론을 가졌다"라고 평가했다.
중국 외교부도 "세 정상은 이번 3자 회담을 통해 상호 이해를 증진하고 협력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확인했다"라고 논평했다.
시 주석도 이날 모두 발언에서 "현재 세계는 새로운 격동·변혁기에 진입했다"며 "이 세계의 중요한 두 축의 힘으로서 중국과 유럽 양측은 전략적 소통 심화와 공동 인식 등으로 중국-유럽 관계의 안정적이고 건강한 발전 추진에 나서야 하고 세계 평화와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공헌을 해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프랑스 방문은 2019년 이후 5년 만이다.
회담이 끝난 뒤 시 주석은 두 나라 경제인이 모인 경제 포럼장에서 폐막연설을 하고, 엘리제궁 국빈 만찬에 참석했다.
중국과 프랑스 두 정상 부부는 순방 이틀째인 7일 프랑스 남부 오트 피레네로 옮겨 점심을 함께한다. 이곳은 마크롱 대통령의 외할머니가 2013년까지 살던 곳으로 마크롱 대통령이 종종 방문하는 '마음의 고향'이다. 프랑스 측이 준비한 '파리 밖 일정'은 작년 마크롱 대통령 초청에 대한 보답 차원이자 개인적 친밀감을 높이려는 사교 행사로 보인다. 시 주석은 프랑스에 이어 세르비아와 헝가리를 방문한다.
NYT, 시 주석 방문은 서방 동맹 갈라놓으려는 것
뉴욕타임스(NYT)는 5일자 기사에서 "미국은 시 주석의 이번 유럽 방문을 서방 동맹(미국과 유럽)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시 주석의 노력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NYT는 "시 주석이 찾는 세 나라는 미국의 전후 세계질서 구축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나라들이자 중국을 필수적인 균형추로 간주하며, 중국과 경제적 관계를 강화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방문에서 시 주석이 "유럽에 대한 중국의 점증하는 영향력을 보여주고 실용적인 화해를 추구하려 한다"라고 진단했다.
앞서 시 주석은 5일(현지시간) 르피가로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중국과 프랑스가 관계를 맺으면서 동서양의 소통을 여는 가교가 세워졌다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중국은 세계에 더 많이 개방하고 프랑스 및 다른 나라들과 협력을 심화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우리는 중국의 제조업 분야를 완전히 개방했으며, 통신과 의료, 기타 서비스에 대한 시장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해 더 빠르게 움직일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과 프랑스는 올 해 수교 60주년을 맞았다.
june@fnnews.com 이석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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