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민 도쿄특파원
도쿄에 살면서 전기, 가스, 수도 등 모든 공공요금을 라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내고 있다. 일본인들은 아직도 아날로그가 익숙하다. 대다수는 지로를 우편으로 받아 가까운 편의점에서 공공요금을 현금 납부한다. 비교적 젊은 층 일부가 한국처럼 자동 계좌이체 서비스를 이용한다.
기자는 부임 당시 30년 만에 물가가 가파르게 올라가는 일본 경제를 체감하기 위해 자동이체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라인 플랫폼을 써보기로 했다.
집으로 도착하는 요금통지서의 바코드를 촬영하면 연계된 계좌로 요금을 납부할 수 있는 간편한 시스템이다. 얼마나 돈이 빠져나가고 있는지 체크하기가 쉬웠다.
그러면서도 그때는 1억2000만 일본인의 국민 메신저를 넘어 공적 인프라가 된 라인 그리고 이걸 개발한 네이버가 '진짜 대단하다'라고만 쉽게 생각했다.
물론 현재 라인을 운영하는 곳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50%씩 투자해 설립한 라인야후(A홀딩스)라는 한일 합작회사다. 하지만 아직도 '라인=네이버'라는 인식이 깊다. 이 때문에 '한국 회사'를 통해 일본 공공요금을 납부한다고 생각하니 신기했던 것이다. '외국 회사가 이런 공공영역의 일도 가능하구나' '일본은 지금껏 토종 플랫폼 하나 안 만들고 뭐했을까'라면서.
그 대단함이 결국 도를 넘은 것일까. 최근 갑자기 일본 정부가 나서 '라인을 내놓으라'며 네이버를 압박하고 있다. 갑자기라기보단 일본의 정보를 과점한 라인을 손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차에 칼을 빼든 것으로 보는 게 맞겠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1월 말 라인야후의 자사 서버가 제3자의 공격을 받아 약 52만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을 빌미 삼았다. 일본 정부는 라인야후가 대주주인 네이버와 시스템을 공유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총무성은 3월 시스템 분리를 요구하는 행정지도를 내렸다. 회사도 2026년 12월까지 완료하겠다는 재발방지대책 관련 보고서를 제출했다. 회사는 보고서에서 네이버클라우드 데이터센터와 라인 데이터센터 간 네트워크 연결을 수정, 불필요한 통신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라인 시스템에 대한 무단접근이 원인인 만큼 접근 설정을 변경하고 두 시스템 사이 방화벽을 설치해 불필요한 통신은 모두 차단한다고도 했다.
회사 측은 "올해 6월까지 위탁 및 통신 차단에 대한 검토 계획을 수립해 단계적으로 시스템을 분리하고, 또 네이버와 인증 시스템·인증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상황도 개선하겠다"고 전했다. 회사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신속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 측은 '불충분하다'는 말로 뭉개면서 소프트뱅크에 '자본관계를 재검토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렸다. 사실상 소프트뱅크가 라인야후 지분을 더 사들여 네이버를 배제하고 단독경영하라는 주문이다.
주요국의 정부가 민간기업에 행정지도로 지분정리를 참견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일본 매체조차도 "공공 인프라가 된 라인이 네이버 의존 상태에 계속 노출되는 것을 당국으로서는 용인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의 행정지도를 네이버가 따라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 다만 라인의 전 세계 이용자는 약 2억명인데, 그 본진이 절반인 9600만명의 이용자가 있는 일본이다. 그런 나라의 정부가 장애물이 되는 것 자체가 네이버엔 대형 악재다. 이 시점에서 안 좋은 기억이 스친다. 2019년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를 단행한 바 있다.
이때 50% 안팎이던 아베 신조 내각의 지지율은 60%대까지 치솟았다. 역대 가장 인기가 없다는 현 기시다 후미오 내각도 20%대 지지부진한 지지율로 퇴진 위기에 몰렸다가 전날 약 30%(민영 JNN)까지 반등했다. 두 그림이 겹치는 것은 단지 우연이고, 기우였으면 한다.
km@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