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의대생이 연인을 흉기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해당 사건이 언론과 사회에 회자되는 이유는 피의자가 '수능 만점자' '명문대 의대생'이라는 수식 때문이다. 그러나 이별 통보 등으로 연인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살해한 사건은 도처에서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교제폭력으로 검거한 피의자 수는 2020년 8951명에서 2023년 1만3939명으로 급격하게 늘었다. 2020년 대비 55.7% 증가한 수치다. 교제 살인에 대한 정부 공식 통계는 없지만,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 보도된 사건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최소 138명의 여성이 남성에게 살해된 것으로 나타났다.
교제 폭력은 특성 상 드러나지 않은 사건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치안 전망 2024' 보고서는 "교제 폭력은 친밀한 관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폭력 행위라는 점에서 당사자 간 교제 폭력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상대방의 폭력 행사를 용인하는 경우도 상당수 발생한다"고 짚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교제폭력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막지 못하면 더 큰 폭력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제대로된 처벌은 요원하다. 지난해 검거된 1만3939명 중 고작 2.2%인 310명이 구속됐다. 교제폭력중 폭행·상해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이 안되는 수치다. 지난해 1만3939건 중 9448건이 이에 해당했다. 접근 금지 조치 등을 할 법적 근거도 부족하다. 가정폭력범죄나 스토킹 범죄가 관련 법에 따라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과 대조적이다. 교제폭력은 주로 폭행·협박죄로 입건하는데 반의사불벌죄여서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내면 처벌받지 않는다.
교제 폭력을 범죄로 규정한 법안들은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법안들은 소관위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어 오는 29일 국회가 임기를 마침에 따라 폐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법의 제정도, 공적 대책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가장 필요한 것은 '작은' 교제 폭력도 죄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재고 아닐까. 교제 폭력은 사소한 말다툼에서 벌어져 강력 범죄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세간에서는 연인간의 다툼을 사적 영역이라 치부한다. 이때문에 가해자는 본인 행동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위법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위험성을 아는 것, 이 과정이 엄연한 죄이며 상상하지 못할 큰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 '사소하고 작다' 여기는 가해자들 마음속에 느껴야 할 죄악이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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