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범 건설부동산부장
지금은 생소하지만 정부가 '청약주의령'을 발동한 적이 있었다. 2006년 경기 파주 운정신도시에 공급된 모 분양단지로 3.3㎡당 평균 분양가는 1297만원이었다. 주변 집값보다 500만원가량 높았다. 공공택지인 운정신도시는 분양가상한제(2005년 3월 시행)를 적용받았지만 해당 단지는 지구지정 이전에 부지를 확보해 규제를 받지 않았다. 같은 해 서울 강북권의 아파트 3.3㎡당 평균 매매가 1149만원(부동산114 집계 기준)과 비교해도 100만원 이상 비쌌다.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이에 당시 건설교통부는 전무후무한 '청약자제'를 권고했다. 하지만 청약접수 첫날 1순위에 4000여명이 몰려 평균 4.09대 1의 경쟁률로 전 평형이 마감됐다. 조기완판 흥행몰이로 건설사는 브랜드 인지도를 제고하는 효과까지 거뒀다.
이 같은 반전은 그해 전국 아파트 값 상승률이 24.8%로 역대 최고 수준의 집값 폭등기였기에 가능했다. 이후 파주는 물론 인근 지역과 서울 등 수도권 분양가 오름세는 더 가팔라졌다.
2024년 5월 서울 마포구 도화동 마포로 1-10지구 재개발조합은 3.3㎡당 공사비를 1000만원대로 올려 시공사를 모시기 위한 4번째 입찰공고를 냈다. 강남권 재건축 사업장들이 900만원대를 내건 것과 비교해도 높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공사비 쇼크에 건설사들이 웬만해선 꿈쩍도 하지 않아서다. 늘어난 공사비는 조합원들의 분담금에 전가되고, 이는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전국 곳곳 정비사업장들이 공사비 갈등 지뢰밭이다. 대부분 비용 상승이 불가피해 분양가 역시 당초 예상보다 오르는 건 시간문제다. 과거에는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인위적으로 분양가를 끌어올렸다면, 현재는 사업주체 의지와 무관하게 원자재 인플레이션이 자연스레 분양가를 밀어올리고 있다.
실제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이 원자재, 노무, 장비 등 공사 투입비용 증감률을 지표로 산출한 건설공사비지수의 경우 올해 3월 154.85(2015년 100)로 2020년 1월 이후 4년1개월 만에 최고치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2월 117.33과 비교하면 31.9% 뛰어올랐다. 이는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부동산114가 집계한 서울 아파트 3.3㎡당 평균 분양가는 2000만원대(2016년 2126만원)에 진입한 지 6년 만인 2022년에 3476만원으로 3000만원을 뚫었다. 지난해에는 3508만원으로 2019년(2613만원) 이후 34%나 급등했다. 시차는 다소 있지만 코로나19 이후 분양가와 건설공사지수 상승률이 나란히 30%대이다.
하지만 시공사들은 고분양가 논란에 따른 미분양 우려뿐 아니라 시장침체, 프로젝트파이낸싱(PF) 고비용 구조 등 전방위 리스크에 휩싸여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2024년 1월 월간 건설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종합건설사 폐업건수는 전년(362건) 대비 219건 증가한 총 581건이다. 2005년 629건 이후 최다 규모다. 올해도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4월까지 전국에서 폐업한 종합건설사는 187곳에 달한다. 매년 1~4월 기준으로 2011년(222건)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다.
관건은 분양가가 낮아질 수 있느냐다. 당장 미국의 강달러 기조부터 부담이다. 자국의 원자재 등 수입물가가 낮아져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되는 반면 다른 나라에 물가상승 부담을 전가할 수 있어 굳이 서두를 이유는 없어 보인다. 또한 한번 오른 인건비는 하향조정이 쉽지 않다.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안전관리자 배치,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 및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의무화, 층간소음 사후인증제 등 공사비 고정비용 상승 촉발요인이 수두룩하다.
업계는 이에 따른 공사비 원가상승률이 15%를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 '고(高)분양가'가 건설업계도 반기지 않는 '고(苦)분양가'가 되고 있는 셈이다.
분양가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향후 시장 정상화의 발판이 될지, 침체 가속화의 트리거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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