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부국장
이 글을 쓰고 있는 15일 중으로는 1000만 돌파가 확실시된다. 마동석 주연 영화 '범죄도시4' 얘기다. 하루 전인 14일 자정 기준으로 누적 관객수가 993만명이었으니 7만명 모자라는 1000만이다. 15일이 휴일인 점을 감안하면 7만명은 식은 죽 먹기다. 1000만 돌파는 지난달 24일 개봉 이후 불과 22일 만에 이룬 성과다. 게다가 '범죄도시4'는 이번 영화를 포함해 시리즈 4편 중 3편이 1000만 영화에 등극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시리즈 전체 누적 관객수도 4000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 모두가 박수 치며 환호하는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서울의 봄'(2023년)이나 '파묘'(2024년)가 1000만 관객을 불러모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스크린 독점을 통한 상영관 싹쓸이의 결과"라거나 "과장된 홍보를 통한 무리한 1000만 만들기"라고 시비를 거는 쪽이 있어서다. '범죄도시4'의 압도적 흥행에 비판적인 사람들 중에는 "이러다가 한국 영화 다 죽는다"고 분통을 터뜨리는 이도 더러 있다.
처음 불만이 터져나온 건 이달 초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였다. 지난 1일 개막한 영화제가 '생존을 넘어 번영으로'를 주제로 마련한 토론회장이 본의 아니게 시끌벅적한 성토장이 됐다. 도마에 오른 건 때마침 개봉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던 '범죄도시4'였다. 개봉 첫주 스크린 점유율이 80%를 상회한 걸 두고 한 영화사 대표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또 다른 참석자가 "이런 상황이면 영화 한두 편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다 죽을 판"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토론회장 이곳저곳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는 게 참석자들의 귀띔이다.
이날 비판론자들이 내놓은 대안이 '스크린 상한제'다. 이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 건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9년 문재인 정부 때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당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영화는 이번처럼 한국 영화가 아니라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영화 '어벤져스4'였다. '어벤져스4'는 불과 개봉 4시간 만에(하루가 아니라)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개봉 전 티켓 예매량이 200만장을 넘었고, 개봉 첫날 상영점유율도 90%에 육박했다.
할리우드 텐트폴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당시에도 독과점 논란과 함께 스크린 상한제 도입 논의가 뜨거웠다. 그땐 실제로 스크린 상한제를 제도화하려는 구체적인 움직임도 포착됐다. 프라임 시간대에 한 영화의 총상영횟수를 50%로 제한하는 내용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 이름으로 대표 발의됐고, 당시 문화정책을 총괄하던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강력한 도입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스크린 상한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뜨거운 논란만 있을 뿐 번번이 법제화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길 반복해왔다. 영화업계에서마저도 입장에 따라 이에 대한 의견이 찬성과 반대 두 패로 나뉘어 있어서다. 언뜻 들으면 문화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당장 스크린 상한제를 도입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이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일괄규제는 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의외로 크기 때문에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를 만들었더니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어서다.
예를 들면 이런 문제도 생각해볼 수 있다. 블록버스터급 대작 영화는 기본적인 수요가 있기 때문에 상영을 제한받을 경우 장기상영을 추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되면 스크린 상한제로 발생하는 빈자리를 다른 상업영화들이 차지하고, 스크린 상한제를 통해 보호하려고 했던 독립예술영화나 작은 영화들이 오히려 상영 기회를 잃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세상 일이 늘 그렇듯이 선한 의도로 시작한 일이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영화의 선택과 소비는 시장의 논리에 맡기는 게 자연스럽다. 그게 순리다. 영화는 작품인 동시에 상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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