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21~23일 라이시 대통령 장례 절차 착수
외교 정책은 '최고지도자' 권한, 대통령 사망해도 국제 유가 잠잠
美, 이란과 원수지간이지만 애도 성명 발표. 北도 조전 보내
라이시는 차기 최고지도자, 사망으로 권력 승계 망가져
세습 승계 가능성...권력 다툼 대비해야
6월 대선에서 또다시 강경 우파 집권하면 민심 이탈 거세질 수도
20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추모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전날 사망한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포스터를 들고 있다.EPA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이란에서 차기 '최고지도자'로 꼽히던 대통령이 임기 중 사고로 숨지면서 본격적인 장례 및 승계 절차가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외교 및 중동 정책이 어차피 최고지도자의 손에 달린 만큼 대통령의 사망으로 바뀌는 것은 없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란 내부에서 최고지도자 후보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권력 투쟁과 민심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1~23일 장례, 美 등 각국에서 애도
AP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20일(현지시간) 발표에서 앞으로 5일 동안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한다고 알렸다. 전날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이란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 주(州)에서 열린 기즈 갈라시 댐 준공식에 참석했다. 그와 호세인 아미르 압돌라히안 이란 외교 장관 등 총 9명이 탑승한 헬리콥터는 주도 타브리즈도 향하던 중 산악지대에서 악천후 가운데 추락했으며 탑승자 모두 사망했다.
하메이니는 20일 이란의 부통령 12명 중 제1부통령을 맡고 있는 모하마드 모크베르를 대통령 대행으로 임명했다. 이란의 모흐센 만수리 행정담당 부통령은 같은날 발표에서 21~23일에 걸쳐 라이시 및 사망자들의 장례식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장례는 21일 오후 9시 30분부터 타브리즈에서 시작된다. 시신은 장례 예배 이후 이란의 종교 성지 쿰으로 이동했다가 같은날 수도 테헤란으로 옮겨진다. 22일에는 테헤란에서 대규모 장례식이 열린다. 라이시의 시신은 23일 그가 과거 최고지도자 대변인 생활을 했던 동부 비르잔드를 거쳐 그의 고향인 북동부 마슈하드로 이동하며, 같은날 저녁에 매장된다.
이란과 사이가 좋지 않은 미국 정부는 20일 국무부 대변인 명의로 애도 성명을 냈다. 국무부는 "추락 사고로 라이시와 아미르 압돌라히안, 다른 정부 대표단 일원이 사망한 것에 대해 공식적인 애도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같은날 온라인 브리핑에서 "이란 대통령 사망에 애도를 표한다"며 "충돌 사고 발생 배경과 관련해서는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커비는 미국의 장례식 조문단 파견 여부에 대해 "오늘 발표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미국의 제재로 헬리콥터 부품을 구하기 어려워 라이시가 사고를 당했다는 이란 측 주장에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미 국무부의 매슈 밀러 대변인은 같은날 브리핑에서 "애도 성명이 그가 판사나 대통령으로서의 기록이나 그의 손에 피가 묻었다는 사실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라이시는 거의 40년간 이란 국민을 탄압하는데 가담해왔다" 비난했다.
같은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통령 대행을 맡은 모크베르에게 라이시의 사망을 애도하는 조전을 보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도 20일 모크베르에게 전화를 걸어 애도의 뜻을 전하고 협력을 약속했다.
지난 2019년 5월 31일 이란 테헤란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운데)가 연례 종교 행사에 참석한 모습.AP연합뉴스
이란 권력 투쟁 위기...세습 국가 가나?
미 뉴욕 시장의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21일 오전 1시 기준으로 배럴당 79.22달러를 기록해 전일 대비 0.73% 하락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석유 시장이 조용한 이유에 대해 이란의 외교 정책이 최고지도자의 독점 영역이며, 라이시의 사망과 거의 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안전자산으로 통하는 금의 경우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와 맞물려 20일 뉴욕 선물 시장에서 온스(31.1g)당 2454.2달러(약 334만원)까지 거래되면서 역대 최고가를 나타냈다.
영국의 중동 전문 매체 암와즈닷미디어의 모하메드 알리 샤바니 편집자는 미 CNN을 통해 "이란이 지역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나 동맹과 협력 모두 현재와 비슷하게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역시 크게 바뀌지 않는다고 내다봤다.
이러한 현상은 이란의 특이한 권력 구조 때문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왕정을 몰아낸 뒤 성립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은 대통령보다 높은 종교인이 나라를 지배하는 신정국가다. 현재 국가 최고지도자, 종교 최고지도자, 군 최고 통수권자를 겸직하고 있는 하메네이는 대통령 인준·해임권을 가지고 있다. 최고지도자는 입법과 사법, 행정 등 국정 전반에서 최후의 의사결정권자다. 이란의 대통령은 일반적으로 최고지도자의 후계자들이 맡으며 하메네이 역시 과거 이란의 3~4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올해 85세인 하메네이는 이미 고령에다 지병도 있는 상황에서 그 동안 후계자로 키웠던 라이시가 사라지면서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이스라엘 영자지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은 라이시 사망 이후 후계자 자리를 놓고 이란 내부에서 권력 다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라이시의 사망으로 이란 정계의 막후 실력자로 평가받는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존재감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CNN은 모즈타바가 아버지의 자리를 이어받는다면 세습 왕정을 타파했던 현 체제가 근간부터 흔들린다고 지적했다.
일단 이란 선거관리위원회는 20일 발표에서 오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대통령 후보 등록을 받고, 6월 12~27일까지 대선 운동기간이라고 밝혔다. 선거일은 6월 28일이다. 2021년 8대 대통령에 취임한 라이시는 임기를 약 1년 남기고 사망했으나 새로 뽑히는 9대 대통령은 4년의 임기를 새로 시작한다. CNN은 강경 우파들이 대거 당선된 지난 3월 이란 총선을 언급하며 이번 대선 역시 강경파가 득세한다고 내다봤다. CNN은 총선 당시 투표율이 역대 최저 수준인 41%에 불과하다며 경제난과 우파 정부에 분노한 시민들이 투표에 관심을 잃었다고 분석했다. 이미 이란 대중은 지난 2022년 전국적인 '히잡 시위'에서 우파 정부 및 최고지도자 체제에 불만을 드러냈다.
CNN은 하메네이가 중도 인물을 중용할 경우 민심을 되돌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샤바니는 "투표율은 체제의 정당성을 알려주는 표본"이라며 "이번 대선은 이란에게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10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의 한 투표소에서 의회 결선 투표를 하고 있다. 이란은 지난 3월 총선을 치렀지만 선거구에서 최소 득표율 20%를 넘긴 후보가 없을 경우 결선 투표를 실시했다.AP연합뉴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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