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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성의 인사이트] '비상' 뗀 경제…'비상등' 켠 재정

[김규성의 인사이트] '비상' 뗀 경제…'비상등' 켠 재정
김규성 경제부 부국장 세종본부장
"여기저기서 경제회복 청신호가 들어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현재의 경제상황을 이같이 진단했다. 지난 17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온 언급이다. 최근 경제지표로 봤을 땐 대통령의 진단은 적절하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올 1·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3% 증가했다. 코로나1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올 4월까지 수출은 전년 대비 10%가량 늘었다. 고용도 순항 중이다. 고용률은 4월 기준 27개월 연속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국내외 평가도 좋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수정했다. 지난 2월 전망은 2.2%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2.2%에서 2.6%로 높였다. 지표 호조에 풀 죽어 있던 정부의 경기 표현에도 잔뜩 힘이 들어갔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5월호'에서 "제조업·수출 호조세에 내수회복 조짐이 가세하며 경기회복 흐름이 점차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했다. 지난달엔 '회복 흐름 확대' '내수회복 조짐' 문구가 없었다. 나아가 매주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던 '비상경제장관회의' 명칭을 '비상'을 빼고 '경제장관회의'로 바꿨다.'비상'경제장관회의는 그동안 2년 가까이 열렸다.

접두사 '비상'을 뗀 정부의 자신감과 달리 경제의 미래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대외변수는 차치하더라도 총선 이후 커진 불확실성이 경제 전반에 부담요인이다. 우선 국가개입 축소, 재정건전화, 민간기업의 경쟁력 강화, 전략산업 투자 확대 등 윤 정부 경제정책 기조 유지전략이 명확하지 않다. 대부분 국회 입법이 뒷받침돼야 하고 구조개혁 과제이기도 해서다. 거대야당이 장악한 22대 국회에서 정부 의지만으로 정책 추진은 거의 불가능하다. 단순히 국회 소통관에서 장관들이 정책홍보를 강화하는 것만으론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다. 현실은 이렇지만 협치 신호는 뚜렷하지 않다.

재정전략회의의 무게는 무겁다. 대통령, 국무총리, 경제부총리가 모두 참석한다. 3명이 동시에 한자리에 모이면서 국무위원이 필참하는 유일한 정부 회의다. 그 정도 회의에서도 내년 예산, 향후 5년간의 국가재정 흐름에 대한 솔깃한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내년 예산 편성 때 저출생 대응, 연구개발(R&D), 약자복지, 필수의료에 대한 투자 확대를 하겠다고만 했다. 새로 써야 할 돈만큼을 기존 예산에서 잘라내 조달하겠다는 '알뜰함'이 유일한 재정 확보방안이다. 이른바 '고강도 지출구조조정'이다. 지출구조조정은 2년 연속 해왔고 내년까지 하면 3년째다. 나아가 세수도 크게 개선되지 않아 비빌 언덕조차 시원찮다.

안정적 재정운용 구조는 대외변수 영향이 큰 우리나라 경제구조에선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세수 추이 등 재정관련 지표에 주목하는 이유다. 외환보유액과 함께 국가신인도의 가늠자다. 그럼에도 제시된 정부 전략은 있지만 진척은 없다. 재정을 끌어올 묘안이었던 지방교육재정 교부금 개선은 진행형이다. 내국세의 일정 비율로 고정해 거액을 배분하는 방식은 학령인구 급감으로 개선돼야 하지만 중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남는 교부금을 저출산·고등교육 예산으로 전용하는 안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재정여력을 키울 남은 방안은 증세다. 감세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정부로서는 증세는 쉽지 않겠지만 선택지에 포함해야 한다. 국가소멸론까지 대두된 인구위기 극복, 전략산업 투자 확대 등 시급한 현안은 재원 마련이 선행돼야만 한다. 10%에 묶여 있는 부가가치세 세율을 OECD 수준으로 높이고, 소득세 부담을 높이되 가족친화적 개편을 위해 인적공제를 확대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조언도 있다.


경제는 비상을 뗐지만 재정은 '비상등'을 켰다. 안정적 재정운용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중장기 성장은 공염불이다. 성장률 상향 조정 같은 단기지표들에 과도한 자신감을 보이면서 안주할 때가 아니다.

mirror@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