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4차례 수사에도 피의자 특정 못해 종결
과거 N번방 알린 '추적단 불꽃' 도움받아 검거
지난 3월15일 A씨(40)를 서울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부근으로 유인해 특정하는 장면. 영상=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
[파이낸셜뉴스] 서울대에서 'N번방'을 떠올리게 하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벌어졌다. 서울대 졸업생들이 후배 여학생 등 60명이 넘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음란 합성물을 만들어 퍼트렸는데, 경찰이 네 차례 수사하고도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수사를 종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경찰은 'N번방'을 알렸던 '추적단 불꽃'의 도움을 받아 범인을 유인해 검거했다.
서울대 졸업생, 동문·지인 등 61명 합성음란물 제작·유포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서울대 동문 12명 등 수십 명의 사진으로 음란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30대 남성 박모 씨와 강모 씨를 지난달 11일과 이달 16일 각각 구속 송치했다고 21일 밝혔다.
박씨 등이 만든 음란물을 텔레그램에서 공유받아 재유포하고 지인들을 상대로 허위 영상물 등을 제작·유포한 남성 3명도 이달 검찰에 넘겨졌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2021년 7월부터 경찰에 검거된 올해 4월 초까지 서울대 동문 12명을 비롯한 61명의 지인 여성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해 제작·유포한 혐의(성폭력처벌법상 허위 영상물 편집·반포 등)를 받는다. 이들이 제작한 불법 합성물은 100여건에 이른다.
박씨는 강씨로부터 합성 음란물과 함께 피해자 신상정보를 받아 텔레그램 대화방에 유포하고 피해자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등 접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불법 합성물을 제작하거나 유포하는 것 외에도 불법 합성물을 재생한 뒤 이를 보고 음란 행위를 하는 모습을 찍어 또 다른 영상으로 만들었다. 성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음란 행위 도중 피해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대담함까지 보였다.
박씨와 강씨가 만든 불법 합성물은 주로 박씨가 만든 200여개 대화방에서 유포됐다. 한 대화방당 최대 5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포렌식을 당할 수 있으니 보고 삭제하라"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 우리는 한 몸이다"고 말하며 경찰 적발에 대비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피해자 고소했지만 수사 중지와 재수사 반복
박씨의 연락을 직·간접적으로 받아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일부 피해자는 각각 서울 서대문·강남·관악경찰서와 세종경찰서에 개별적으로 고소했으나 경찰은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며 수사 중지·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지난해 12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관련 사건들에 대해 재수사 지시를 내렸고 서울청 사이버수사대가 다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이들이 있는 텔레그램 대화방 등에 직접 잠입해 증거를 수집했다. 박씨와 강씨는 잠입해있던 여성 수사관에게도 전화를 걸어 신음 소리를 내는 등 음란 행위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N번방' 알렸던 '추적단 불꽃' 도움으로 검거
경찰은 이 과정에서 N번방 사건을 알린 '추적단 불꽃'의 도움을 받아 범인을 유인해 검거했다. 추적단 불꽃 소속 원은지씨는 지난 2019년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N번방 사건을 추적하며 디지털 성범죄가 어떻게 벌어지는지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번 사건의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했고, 범인을 잡기 위해 ‘서울대 N번방’에 잠입했다.
원씨는 "그놈은 ‘RT’와 ‘김T’ 두 개의 계정을 갖고 있었다”며 “그놈이 주기적으로 말을 걸어 ‘같이 서울대 X들 능욕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원씨는 2년동안 김T(박씨) 신뢰를 얻으며 신원을 특정하려 했지만, 김T는 경찰과 대화 후 원씨를 차단하는 등 용의주도하게 행동했다고 한다.
이에 원씨는 김T와 대화하기 위해 '미모의 서울대 출신 아내'를 가상으로 꾸며냈다. 김T는 원씨의 가상 아내에게 집착하며 심지어 “내가 아내를 강간해도 괜찮으냐”고 물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김T는 원씨의 ‘가상의 아내’의 팬티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구했고, 실제 속옷을 달라는 요구까지 했다.
원씨는 "진짜 주겠다"고 약속했고, 경찰은 속옷을 숨긴 장소에 나타난 박씨를 검거할 수 있었다"고 했다.
끝으로 원씨는 "박씨가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죽여 버린다' 등등의 말로 종종 협박 했었다"라며 “그럼에도 제보를 결심한 것은 이 범죄가 결코 가벼운 범죄가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어서”라고 전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