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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다이야몬드 소주'

[기업과 옛 신문광고] '다이야몬드 소주'
배우 한예슬을 모델로 내세운 '다이아몬드'는 3년 전에 부산의 주류업체인 대선주조가 내놓은 소주다. 레트로 바람을 타고 돌풍을 일으킨 '진로 이즈백'과 같은 옛 브랜드이기도 하다. 오륙십년 전 진로와 삼학이 양분하고 있던 소주 시장의 일각을 차지하던 대선주조의 주력제품이 '다이야몬드'였다. 맑고 값비싼 다이아몬드의 이미지를 활용한 것이다.

옛 다이야몬드 소주는 중앙지 1면에 경품행사 광고(조선일보 1967년 8월 29일자·사진)를 내기도 했다. 지방 소주로서는 이례적이었다. 당시의 인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1등 상품이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이고 2등이 금성 텔레비전, 3등이 금성 선풍기, 4등이 쌀 한 가마로 돼 있다. 경품행사는 당시 주류업체나 백화점 등이 경쟁적으로 펴던 마케팅 기법이었다. 진로는 병 두꺼비가 그려진 뚜껑을 가져오면 추첨을 통해 금두꺼비를 줬다.

복고풍 소주를 내놓은 뒤에도 대선의 실적은 그리 좋지 못하다. 업황부진은 지방 소주들의 공통된 현실이다. 대선의 지난해 매출은 563억여원으로 전년보다 8.6% 줄었다고 한다. 지방 소주업체로서는 규모가 제일 큰 무학은 매출이 1456억여원으로 4.1% 줄었다. 금복주와 선양도 사정이 비슷하다.

지방 소주의 인기가 떨어지는 원인은 여러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음주량이 줄어드는 데다 소주가 양주와 와인 등에 밀리고 있는 것이 첫번째다. '참이슬'과 '처음처럼'의 지방 시장 잠식도 원인이다. 두 소주의 점유율은 80%까지 올라섰다. 요즘 애향심에 얽매이지 않는 젊은 층은 굳이 지역 소주를 찾지 않는다고 한다. 지역 소멸이 소주에서도 나타난다는 한탄이 들려온다.

소주 '1도(道)1사(社)' 규정과 자도주 50% 이상 의무구매 규정은 지방 소주업체들의 든든한 보호막이었다. 1996년 헌법재판소는 이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고 무한경쟁 시대가 시작됐다. 이후 전국구 소주들의 지방 잠식은 거세졌다. 지방 소주들도 서울 진출을 시도했지만 썩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성인 한 명이 1년에 소주를 평균 52.9병, 맥주를 82.9병 마셨다. 한국은 세계에서 15번째로 술 소비량이 많은 나라라고 한다. 그래도 술 소비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벨라루스-몰도바-리투아니아-러시아-루마니아 순으로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한다. 도수는 따지지 않고 양으로만 본 것이다.

대선주조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 범일동에 처음 공장을 지었다. 대선(大鮮)은 대조선(大朝鮮)의 줄임말인데, 경쟁사인 '대일본 양조'에 맞서려고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광복 후 박경영이 불하받아 다이야몬드 소주로 부산을 주름잡았다. 6·25전쟁 특수는 급성장할 기회를 줬다. 미스코리아 부산 진에게 '미스코리아 다이야몬드'라고 이름을 붙이며 대회를 후원한 적도 있고, 프로권투 세계 주니어미들급 챔피언 김기수의 방어전 생중계를 후원하기도 했다. 2012년 부산시는 다이야몬드를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소주'로 공식 인정했다.

대선주조는 1960년 제주도 주정공장을 인수하고 다이야맥주 등 다른 주류를 판매하며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그 후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 마산의 주정 제조업체 유원산업이 인수해 1974년 공장을 사직동으로 이전했다. 1996년 출시한 23도 'C1'은 제2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따개를 쓰지 않고 손으로 돌려 따는 병뚜껑을 소주에 도입한 것도 대선주조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기업 유원산업은 건설과 골프채 등의 사업에 손대다 실패해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나고 말았다. 대선은 2004년 롯데우유를 거쳐 2011년 향토 기업집단으로 조선기자재, 강판, 페인트, 벤처투자 등 13개 계열사로 구성된 비엔그룹에 인수됐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