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반도체 26조 지원책 발표, 관건은 이행 속도

각국 공격적 지원에 우리도 맞대응
걸림돌 제거하고 막힌 곳 뚫어줘야

[fn사설] 반도체 26조 지원책 발표, 관건은 이행 속도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제2차 경제이슈점검회의 논의 결과 및 반도체 생태계 종합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화진 환경부 장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최 부총리,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사진=뉴스1화상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26조원을 새로 투입한다. 17조원은 반도체 공장 건설자금으로 산업은행이 금융으로 지원한다. 소재·부품·장비 기업 육성을 위한 1조1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펀드도 조성한다. 정부가 23일 이런 내용의 반도체 산업 종합지원책을 발표했다. 직접보조금이 아닌 금융지원과 세액공제 형태로 중소·중견기업을 포함한 반도체 생태계를 육성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번 지원책은 지난 1월 발표한 622조원 규모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계획의 후속대책 중 하나다. 반도체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와 소재·부품·장비 협력사, 해외기업 유치를 촉진하자는 취지다. 미국 등 주요국들의 막대한 보조금 지원을 우리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인도, 일본 등이 자국 반도체 산업에 투입하는 보조금은 110조원에 육박한다. 미국은 반도체 생산라인을 조성하기 위해 보조금 390억달러, 대출·보증 750억달러에 최대 25%의 세액공제까지 해준다.

삼성전자도 최근 미국 정부로부터 64억달러의 보조금을 받아 2030년까지 미국 텍사스주에 450억달러의 대규모 투자를 계획 중이다. 일본 정부도 대만 반도체 기업 TSMC의 제1·2공장에 10조원 이상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타타그룹의 반도체 공장 건설 등에 정부 기금 100억달러를 투입한다.

반도체 강국이라 자부하는 우리나라의 이번 지원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세금공제 혜택과 인허가 지연, 용수·전력 인프라 조성 차질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기업 특혜 시비까지 불거져 정부도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21대 국회는 반도체 시설투자에 15~25%의 세액공제를 연장하는 조세특례제한법(K칩스법) 개정도 미뤘다. 세계는 전쟁을 벌이듯 기업을 지원하는데 우리는 안이하다 못해 정치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는 용인·평택 등 경기 남부에 2047년 완공을 목표로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 계획이다. 그러나 속도가 매우 더디다. 그중 용인시 처인구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대규모 투자에 나서는 지역이다. SK하이닉스가 이곳에 120조원 투자를 발표한 게 2019년 2월인데, 아직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용인 국가산업단지는 내년 상반기에 승인받아 2026년 착공한다. 첫 반도체 공장이 완공되는 2030년이 되면 미국·일본·대만 등의 첨단 반도체 생산라인들은 이미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비전과 대책만 화려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관건은 이행 속도다. 중앙부처와 지자체가 전담반(TF)을 꾸려 단지 조성, 전력·용수, 인허가 등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현장 애로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집행 능력과 속도를 더 높여야 한다.

전반적인 점검도 필요하다. 대통령실·중앙정부·지자체 합동의 반도체 클러스터 이행 전담반을 꾸려 현장에서 상시 가동하는 방안도 추진할 만하다.
현장에 나가 분야별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속도를 내도록 막힌 곳을 뚫어줘야 한다. 그것이 공무원들이 할 일이다. 관료주의가 강한 일본 정부가 TSMC 공장을 어떻게 발표 6개월 만에 착공해서 22개월 만에 준공할 수 있었는지 알아 보라. 우리처럼 탁상행정만 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