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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업은 변화 몸부림, 정부는 화답 없었다

[기자수첩] 기업은 변화 몸부림, 정부는 화답 없었다
장민권 산업부
"충격적인 소식이네요."

최근 전격 교체된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장 인사를 지켜본 내부 관계자의 말이다. 삼성전자 직원들도 "깜짝 놀랐다"는 반응을 쏟아낼 만큼 이번 인사는 일부 최고위 경영진에게만 공유된 채 긴박하게 진행됐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사령탑이 정기인사도 아닌 시기에 '원포인트'로 교체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번 인사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반도체 사령탑에 부회장급 인사를 앉힌 것은 뼈를 깎는 조직 쇄신을 통해 흔들리고 있는 삼성전자의 메모리 초격차를 다시 지키려는 포석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2월 정기인사에서 유임시킨 경계현 전 DS부문장을 교체하며 안정보다 변화를 택한 것은 기업들이 당면한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방증이다. 사내 시스템이 급변하는 대외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한 가운데 대대적 변화 없이는 당장 생존조차 담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이번 인사로 표출됐다는 해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사업이 삼성전자 내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을 고려했을 때 삼성전자가 사실상 비상경영을 선포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민간기업조차 대내외 리스크에 대응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데도 정부는 한가하다. 미국, 일본, 유럽 등이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수백조원을 퍼붓고 있지만 정부는 직접지원에 선을 긋고 있다. 파격 지원책을 고민하기보다는 세액공제 등 간접지원책만 연일 내놓고 있다. 23일 발표된 총 26조원 규모의 반도체 산업 종합지원방안에도 반도체 업계가 요구해온 직접지원책은 또 제외됐다.

그러나 정부의 생각은 틀렸다. 반도체는 국가전략기술로 포함될 정도로 국가 경쟁력과 맞닿아 있다. 주요국과 비슷한 수준으로는 못해도 직접 자금을 투입하는 흉내조차 내지 않는 건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경쟁사들은 각국 정부를 등에 업었는데, 우리 기업들은 나 홀로 싸우는 모양새다. 그 사이 한국 반도체 산업이 가진 압도적인 기술 격차는 점차 좁혀지고 있다.


현재 정부를 보면 HBM 투자 적기를 놓친 삼성전자의 과거가 겹친다. 직접지원을 미루는 정부의 오판이 한국 반도체 사업 경쟁력 악화로 돌아오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 지금이라도 반도체 업계와 소통해 직접지원 구상에 돌입할 때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