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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의대 증원, 그 이후는

[강남시선] 의대 증원, 그 이후는
정명진 중기벤처부장
올 한 해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의대 증원이 결국 법원의 결정으로 일단락됐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의과대학 증원이 반영된 각 대학의 2025학년도 입학전형 시행계획 변경사항을 승인하면서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 확정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의료계, 국민 모두 큰 상처를 입었다.

정부는 필수의료정책을 추진하려 했지만 협상에 나서지 않는 의료계로 인해 위신이 떨어졌고, 의료계는 자신들이 원하던 의대 증원 철회를 하지 못했다. 이 와중에 환자들만 치료를 하지 못해 마음 졸이며 무작정 기다리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빅5'인 대형병원을 비롯한 대학병원들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병원 경영위기를 겪게 됐다.

문제가 일단락됐다고는 하지만 아직 산적한 문제들이 있다.

우선 대학병원 진료 정상화가 최우선이다. 지난 2월 이후 환자들은 진료와 수술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전공의들이 떠난 병원은 대학교수와 간호사들이 지켜냈다. 업무의 피로감에 지쳐 진료와 수술을 줄였지만 그래도 의료 현장을 지켰다. 그들의 수고에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전공의들의 복귀는 요원한 일이다. 이들 중 절반 가량은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학병원을 사직하고 개원하거나 피부미용 의원에서 봉직의(월급의사)가 되겠다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 전공의들은 학교를 다닐 때까지 공부만 했던 모범생들이다. 그동안 고생을 하지 않던 이들은 의대를 거친 후 인턴, 레지던트 4~5년을 박봉에 야간업무까지 하면서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이번 사태는 말 그대로 '울고 싶은데 빰 때린 격'이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통해 의료계의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 오점으로 남았다. 물론 정부는 처음부터 의료계에 대화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이미 화가 난 의료계를 잠재우고 참여시키기에는 부족한 태도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역의료, 필수의료를 강화해 기존 의료정책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꺾지 말아야 한다. 의대 증원 이후 의사들이 배출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다. 이 때문에 병원의 인력구조부터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일단 전공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전공의들의 본래 목적인 수련에 대한 부분을 강화하고 저임금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기존처럼 전공의들이 잠을 못 자면서 수련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안인 진료보조(PA)간호사나 입원전담전문의 등을 활용해야 한다. 또 의료진 중에서도 사람의 목숨을 다루거나 힘든 수술을 할 경우에는 보상을 해줘야 한다. 의사들도 충분한 보상이 뒤따르지 않고 힘들기만 하다면 사명감으로 몇십년을 버티기가 힘들다.

물론 이렇게 비용을 쏟아붓게 되면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날 수 있다. 따라서 환자들도 과잉진료를 받지 않도록 제한을 두는 방안이 필요하다. 너무 많이 병원을 가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치료를 시행한다면 이를 건강보험 재정이 아니라 자기부담금으로 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대학병원 진료가 불가능해지자 2차 병원과 전문병원에 환자들이 몰렸다고 한다. 혹자는 이를 두고 '의료의 정상화'가 되고 있다고도 얘기를 했다. 원래 대학병원과 같은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질환만 치료해야 하는데 경증환자까지 몰렸던 것이 사실이다. 이를 제도화하지 않으면 하반기에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마지막 과제는 정부와 의료계, 국민이 다친 마음과 무너진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부분은 시간이 걸리는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합당한 의료개혁 정책을 제시해 의료계가 납득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다면 가능하다. 또 그동안 국민이 의료진에게 보여준 믿음, 의료진이 환자에게 쏟은 애정 등의 기억이 서로의 상처를 봉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