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난민촌 폭격 논의할 긴급 회의 소집
이스라엘은 ICJ 휴전 지시에도 공습 강행
자신들이 피난 구역으로 설정한 지역 폭격, 네타냐후 "실수였다"
美, 이스라엘이 선 넘었는지 검토중...유럽 등은 적극적으로 이스라엘 압박
27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라파 지역에서 피란민들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가건물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신화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피해를 줄이겠다고 공언했던 이스라엘이 스스로 대피지역으로 지정했던 난민촌을 폭격해 수십 명이 사망하면서 국제적인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실수였다고 주장하면서도 가자지구에서 군사 작전을 계속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선' 넘었나?
27일(현지시간) 프랑스 AFP통신에 따르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28일 오후에 알제리의 요청으로 비공식 긴급회의를 소집하기로 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가자지구를 비롯한 중동 문제를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회의는 이스라엘이 라파 서부 탈 알술탄 난민촌을 공습한 직후에 소집됐다. 이스라엘군은 26일 해당 난민촌의 가자지구 무장정파 하마스의 지도부를 겨냥해 정밀 타격을 실시했으며 2명의 하마스 고위 조직원을 제거했다고 주장했다. 하마스 산하 가자지구 보건부는 공습 직후 화재로 인해 최소 45명이 숨지고 249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유엔의 폴커 투르크 인권 최고 대표는 27일 성명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에 "공포를 느낀다"고 강조했다. 그는 "난민촌 피해 현장의 사진은 끔찍해 보였고, 이미 많은 민간인 사망을 초래한 이스라엘의 전쟁 방법과 수단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번 공습은 약 7개월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작전 중에서도 큰 논란을 빚었다. 하마스가 지난해 10월에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하마스 소탕 작전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은 이미 가자지구 북부와 중부를 평정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2월부터 이집트와 국경을 접한 남부 라파 일대를 포위중이다.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슬람 계열 유권자 및 좌파 진영의 반발을 의식해 이스라엘이 라파 지역에서 대규모 지상전을 벌이면 안 된다고 반대했다. 바이든은 라파 지역에 약 130만명의 피란민이 몰려있다며 큰 작전이 벌어지면 인명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3월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라파로 진격하는 행위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고 경고하면서 이스라엘로 가는 무기 지원을 부분적으로 중단한다고 밝혔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즈에서 캘리포니아주립대 산타크루즈 캠퍼스(UC산타크루즈) 대학원생 및 학교 직원들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AP뉴시스
네타냐후 "실수였지만 작전 계속"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지난 6일과 11일에 라파 지역 동부에 피란민 대피령을 내리고 이집트와 연결되는 국경 통로를 점령하는 등 점진적으로 라파에 침투하고 있다. 유엔 최고법원인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지난 24일 이스라엘에 “라파에서 군사 공격 및 다른 모든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지시했으나 이스라엘은 이에 따르지 않았다. 27일에는 이집트와 라파를 연결하는 국경 통로에서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교전이 발생해 이집트군 1명이 숨지고 여러명이 다쳤다.
라파 작전을 강행하면서 민간인 피해를 최소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던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27일 의회 연설에서 실수를 인정했다. 탈 알술탄 난민촌은 이스라엘이 지정한 인도주의 대피 구역으로 지난 6일 이후 수천명의 피란민이 머물고 있다.
네타냐후는 "우리는 라파에서 전쟁과 무관한 주민 100만명을 대피시켰다"며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제 라파에서 비극적인 실수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정책"이라며 "전쟁과 무관한 사람들이 다치는 것은 비극"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네타냐후는 하마스 제거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 가자지구 작전을 이어간다고 못을 박았다. 그는 27일 연설에서 "모든 전쟁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는 전쟁을 끝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튀르키예 아나돌루 통신에 따르면 가자지구 보건부가 집계한 가자지구 사망자는 지난해 10월 이후 27일까지 누적 3만6050명이었으며 같은기간 부상자는 총 8만1026명이었다.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 전차병들이 팔레스타인 가지지구와 가까운 이스라엘 남부에 집결해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서방, 이스라엘 대응책 논의
미 정치 매체 악시오스는 같은날 보도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의 행동을 평가중이라고 전했다. 관계자들은 이스라엘의 이번 공습이 지난 3월 바이든이 언급한 ‘선을 넘는 행동’인지 검토하고 있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같은날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공격할 권리가 있으며 우리는 이번 공습이 이스라엘 민간인을 공격한 책임이 있는 하마스 고위급 테러리스트 2명을 죽인 것으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해왔듯이 이스라엘은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예방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미국보다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압박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27일 발표에서 회원국 외무장관들과 협의를 마쳤다며 이스라엘과 EU가 함께 모여 라파 지역 공세를 논의하는 협의회를 열겠다고 알렸다. 보렐은 앞서 탈 알술탄 난민촌 공습에 대해 “경악했다”고 밝혔다. 그는 동시에 지난 라파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국경 통로 감시 업무를 다시 맡을 수도 있다고 예고했다. EU는 과거 유럽연합국경지원임무단(EUBAM)을 파견해 해당 통로를 감시했으나 하마스가 2007년 가자지구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지역을 장악하자 활동을 중단했다. 문제의 통로는 이달 이스라엘군에게 넘어간 이후 폐쇄되었다.
한편 캐나다의 멜라니 졸리 외무장관은 27일 성명을 내고 "라파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살해한 공습에 섬뜩하다"면서 이스라엘의 라파 작전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캐나다 정부는 가자지구에 사는 캐나다인의 가족 및 친척들이 캐나다에 머무를 수 있는 3년 기한의 특별 비자 발급 건수를 5배 늘려 가자지구 탈출을 돕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 대표들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관련된 회의를 열고 있다.신화연합뉴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