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전문가 왕젠 타이허 즈쿠 고급연구원
리창 총리 "상호존중 견지" 발언 중심엔 양안관계에서의 韓 스탠스 확인 의도
RCEP 장점 충분히 활용한다면 신에너지·반도체·AI 등 첨단분야 협력도 가능
'외교안보 2+2 회의체' 전략적 소통 의지…'청년교류' 한류 재확산 토대 의미
중국의 비영리 민간 싱크탱크인 타이허 즈쿠의 왕젠 고급연구원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이석우 특파원】
"한국과 중국은 동남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 지역에 공동으로 진출할 수도 있고 첨단 분야를 공동으로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5월 31일 만난 중국의 비영리 민간 싱크탱크인 타이허 즈쿠의 왕젠 고급연구원은 "중국과 한국, 일본 정상들의 만남이 동북아 지역의 새로운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계기와 여지를 마련했다"고 긍정 평가했다.
그는 한중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 입장에 대한 배려와 한국 스스로 외교적 활동공간을 축소하지 않도록 균형 감각을 발휘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사회과학원 대학의 교수 겸 연구원으로 일본과 한반도 등을 연구해온 동북아 문제 전문가다. 그는 이날 정부 산하기관인 중국 사회과학원 소속이 아닌 민간 싱크탱크의 학자 입장에서 인터뷰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주요 일문일답.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회담 의미는.
▲4년6개월 만에 한중일 정상이 서울에 모여 공통 관심사를 논의한 것 자체가 3국 관계가 정상궤도로 복귀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한일이 미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상호 호혜적인 미래발전을 바라는 의지의 표현이다. 새 협력 비전과 함께 정체됐던 기존 협력의 틀과 합의도 살려내고 활성화하는 계기가 됐다. 세 정상은 '제9차 공동선언' '한중일 지식재산권 협력 10년 비전 공동성명' 등을 발표했다. 제8차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한중일 협력, 미래 10년 비전'을 이행하고 3국 협력의 메커니즘을 추진하는 한편 아세안과 한중일 간의 다자 틀 내에서 긴밀한 소통을 추진하기로 한 점도 의미를 갖는다.
―이번 만남으로 3국 협력이 회복되고 정상화될까.
▲협력 프로세스의 갈 길이 멀지만 가능한 부분, 경제협력에 집중해야 한다.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가속화하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해 한중일 경제협력 발전의 기반을 공고히 해야 한다. 양국 간, 다자 간 협력 영역을 넓히고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이는 한중 FTA 2단계 협상도 빨리 완료해야 한다. 서비스 무역·투자 협력 자유화, 이를 통한 한중일 FTA 협상 프로세스 추진, 무역 투자 자유화 수준 향상,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건설을 위한 토대도 강화해야 한다. 3국 기업들이 한중일 RCEP의 장점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협력 경로를 모색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중국이 제3국에 대한 경제적 공동진출과 협력을 강조했는데.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는 한중일 3국 협력의 새로운 공간을 제공한다. 한국이 중국과 함께 동남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에 함께 진출하고 협력 공간을 함께 열어나갈 수 있다. 일본은 이미 중국과 함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 고속철도·경전철 등의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공동선언문 제9조는 '한중일+X' 협력을 추진해 3국 협력이 다른 나라에 혜택을 주고, 한중일 3국이 다른 지역과 함께 번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공동선언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입장'이 빠졌는데.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 지지 입장에는 달라진 것이 없다. 한중일 3자 협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미일 안보협력 고도화에 따른 저항도 확인됐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격화되는 미중 전략경쟁, 북한의 돌발 움직임 등을 종합하면 한중일이 소통과 조정을 강화해야 할 객관적 수요가 늘었다.
―북한의 도발이 거세졌다. 북한 비핵화에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나.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일관되게 주장해 왔지만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냉전의 잔재로서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평화 메커니즘의 부재에 있다. 미국 등이 북한을 안보위협으로 간주하고 제재압박에 집착해왔다. 북한의 생존 및 안보 관심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협정 체결 과정을 동시에 진행시키는 '쌍궤병진'과 단계적·동시적 접근 원칙에 따라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추진하자고 주장해왔다. 중국 외교부 웹사이트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과 건설에 관한 중국 방안'(2023년 9월 13일)에서 이 같은 입장이 잘 나타나 있다. 리창 총리는 회의에서 "한반도 정세가 긴장되고 있다"면서 "각 당사자는 건설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해는 북중 수교 75주년으로 시진핑 총서기와 김정은 총서기는 신년 축전을 주고받으며 2024년을 '조중 우호의 해'로 정하고 일련의 활동 시작을 함께 선언했다. 두 나라는 '조중 우호의 해' 행사를 계기로 고위층의 긴밀한 교류, 호혜협력 심화, 인문교류 촉진, 전략적 협력 강화 등 최고지도자들의 중요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가장 강조한 것은.
▲리창 중국 총리는 당시 한중 정상회담에서 "서로의 핵심 이익과 중대한 관심사를 존중하며 신뢰하는 이웃, 상호 성취의 동반자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핵심 이익의 존중에 대해 주목해달라. 중한 관계를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양국의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이익에서 출발해 수교 초심을 견지하고 상호 존중해야 한다. 핵심 이익은 대만 문제다. 중국은 이를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중 핵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중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존중, 서로의 주요 핵심 이익을 존중하는 것이다. 한중 관계의 지속가능하고 건강하며 안정적인 발전의 기초이다. 대만 문제에서 중국의 핵심 관심사를 충분히 중시하고 존중해야 한다.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해 또 개선돼야 할 점이 있다면.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압박이 가중되는 가운데 한국의 대미 편향 정책이 한중 관계의 걸림돌이 됐다. 양국 국민의 상호 신뢰와 인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교 32년의 역사를 돌아보며 짧은 기간에 양국 관계가 크게 발전한 근본원인은 이념의 울타리와 정치제도의 차이를 뛰어넘어 협력, 우호, 평화, 미래의 창조를 위해 이해를 같이하고 힘을 합쳤기 때문이다. 중한 수교의 초심이다. 한중 관계의 갈등 요인이 크지만 그동안 다져온 한중 관계의 근간 역시 튼튼하다고 믿는다.
중국의 비영리 민간 싱크탱크인 타이허 즈쿠의 왕젠 고급연구원(왼쪽)이 지난 5월 31일 한일중 정상회의와 한중일 협력의 미래에 대해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타이허 즈쿠 제공
―이번 회담에서 주목한 점이 있다면.
▲외교부 차관급과 국방 부문 주요 국실장이 참석하는 '외교안보 2+2 회의체' 신설은 이례적이다. 중국은 다른 어느 나라와도 이 같은 회의체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 한국과 전략적 소통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보여준다. 소통을 통해 갈등 요소 해결을 기대한다. 이 같은 대화 메커니즘을 통해 위기 관리 및 오판 방지 등 관계 개선을 위한 더 많은 공간과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한중 협력의 새로운 가능성과 영역을 든다면.
▲중국은 '신품질 생산력'을 강조하면서 산업 고도화와 첨단 분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효과적인 질적 향상과 합리적인 양적 성장을 겨냥한다. 양국 협력과 한국에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신에너지, 반도체, 인공지능, 생명공학, 의료 및 미용 분야에서 협력을 개발해 나갈 수 있다. 양국 관계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류를 제한하는 한한령이 풀리지 않고 있다.
▲'한류'는 중국과 한국의 상호 신뢰를 강화하는 채널이자 플랫폼이다. 2025·2026년을 한중일 문화교류의 해로 삼기로 합의한 만큼 한국 가수들의 중국 공연예술시장 재진입과 한류 재활성화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중한 젊은 세대들이 교류를 강화하고 상호 인식과 신뢰를 높인다면 한류의 재확산을 낙관한다. 한류는 중국의 많은 관중, 젊은 세대의 사랑을 받고 있다. 3국 정상은 "청년 교류가 장기적인 3국 협력의 토대를 다지는 데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 분야 협력의 바탕을 다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는 합의도 힘이 될 것이다.
―한국의 동북아 3국의 협력 촉진자로서 역할과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나.
▲이번 회의 성사에 의장국인 한국의 역할이 컸다. 동북아 3국의 협력 촉진자로서의 역할이 더 커졌다. 3국 협력 프로세스의 발전은 지역 안정과 경제협력에 건설적 기여를 할 것이다. '의장국으로서 중국·일본과 긴밀히 협력하고 3국 협력을 본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한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라는 공동선언문에 적극 동감한다. 더 나아가 한국은 역내 안정을 해치는 '역외 세력'의 배제에 노력해 나갔으면 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동북아 문제 전문가로서 한중 관계에 제언을 한다면.
▲중한 관계는 명실상부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성장했다. 경제적 상호호혜의 심화 속에서 안정적이고 성숙된 발전단계에 접어들었지만 불확실성도 증가했다. 양국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 중 하나는 국가 제도와 이데올로기로 선을 긋지 않고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이익에서 출발해 공동 이익과 공동 관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또 분쟁을 적절하게 처리하거나 (해법을 찾지 못할 때는) 보류하는 가운데 공통의 발전과 협력 성과를 이뤄내야 한다. 한국 정부가 대중국 정책에서 전략적 공간과 여지를 더 마련해 나갔으면 한다.
타이허 즈쿠는 지난 2013년 중국 베이징에 설립된 비영리 민영 싱크탱크다. 문명간 상호교류 촉진, 평화적 발전 지원을 모토로 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 국제 싱크탱크 협력 위원, '일대일로' 녹색개발국제연맹의 위원 기관이다.
june@fnnews.com 이석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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