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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톡] 日 장인정신은 어디로 갔나

[재팬톡] 日 장인정신은 어디로 갔나
김경민 도쿄특파원
일본 제조업의 신뢰가 무너졌다. 도요타, 혼다, 마쓰다, 야마하, 스즈키 등 완성차 업체 5곳이 품질인증 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른 사건이 적발됐다.

부정으로 생산된 모델은 5개사 총 38개종에 이른다. 충격적인 소식에 현지 언론들은 '품질 사기'라는 제목을 달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통감하고 있다. 국토교통성은 안전성 등이 기준에 적합한지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부정 행위와 관련된 생산 차종의 출하 정지를 지시했다. 이날 도요타를 시작으로 나머지 4개 업체에 대한 현장검사가 실시됐다.

국교성은 "부정 행위는 이용자의 신뢰를 해치고 자동차 인증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극히 유감스럽다"며 "위법행위 사실을 확인하고 관련 법에 따라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정행위가 매우 악의적이라고 판단될 경우 자동차 생산 허가가 취소될 수도 있다. 이 경우 생산 및 출하를 재개하기까지 최소 2개월 이상 공장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

이번 부정행위는 현재 발견된 것만 2014년부터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에는 닛산과 스바루가 무자격자에 의한 출하 전 차량검사 등 부정이 판명됐다. 일본 제조업을 대표하는 완성차 업체들의 민낯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세계가 존경하던 일본의 장인정신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연비와 배출가스 데이터를 조작하고, 검사절차를 무시하는 등의 행위는 단순한 규제위반이 아니다. 이는 일본 자동차 산업 전체의 도덕적 해이와 일본 정부의 느슨한 규제, 감독 수준을 반영하는 심각한 문제다.

일본 자동차 산업의 출하액은 전체 제조업의 20%를 차지한다. 취업인구는 550만명이 넘는다. 자동차 산업은 광범위한 기반산업인 만큼 생산과 출하가 장기간 중단되면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는 일본 경제에 찬물이다.

일본 자동차 산업은 단기적으로는 경제적 손실을, 장기적으로는 신뢰 회복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폭스바겐과 아우디의 경우처럼 전 세계의 많은 소비자들이 일본 자동차의 품질을 의심하고, 이는 브랜드 가치의 하락을 초래할 것이다.

일본의 장인정신은 제품의 품질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고유의 정신을 의미했다. 그러나 일련의 인증 부정 사건들은 이러한 장인정신이 얼마나 쉽게 변질될 수 있는지, 혹은 처음부터 허구였는지를 의심케 한다.

많은 일본 기업들은 성과를 높이기 위해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비윤리적 행위를 용인하는 경향이 짙다. 내부감시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부정행위를 미리 방지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한다.

이번 사태는 한국 제조업에도 적잖은 교훈을 준다. 한국 기업들도 높은 윤리적 기준을 유지하고, 내부 통제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신뢰와 품질을 우선시하는 경영철학이 결국 기업에 더 큰 이익을 준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번 일은 한국 자동차 업계에는 기회일 수도 있다. 일본 자동차 산업의 신뢰가 무너진 지금, 품질을 앞세운 한국 자동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이미 뛰어난 품질과 혁신적인 기술로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제는 더 높은 윤리적 기준과 투명한 경영을 통해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잃어버린 신뢰를 우리가 가져와야 한다.

일본 자동차 산업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기업들은 윤리적 경영과 내부통제 강화를 통해 다시 한번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신뢰를 잃는 것은 순간이지만, 이를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장인정신의 본질을 되찾고, 윤리적 경영을 실천하기까지는 이전에 쌓았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k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