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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거리 발길 '뚝'… "창업자 실종에 우리도 폐업 고민" [현장르포]

먼지 쌓이는 황학동
중고 가구·가전파는 땡처리 시장
36년 토박이 "코로나보다 힘들어"
상권 침체에도 임대료는 상승세
카페·술집 등에 밀려 쇠퇴 위기

주방거리 발길 '뚝'… "창업자 실종에 우리도 폐업 고민" [현장르포]
5일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의 한 골목에 중고 가구와 주방 물품 등이 쌓여있다. 사진= 주원규 기자
지속되는 고물가와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도 드리우고 있었다. 주방거리는 폐업한 자영업자에게 사들인 중고 가구·가전을 새로 개업하는 자영업자에게 저렴하게 파는 이른바 '땡처리 시장'이다. 그동안 경기 침체 등으로 폐업이 늘면 저렴하게 중고 가구·가전을 매입할 수 있어 주방거리 상인들은 반사 이익을 누려온 측면이 있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자영업자들이 문 닫는 속도를 개업하는 이들이 따라가지 못하면서 주방 및 가구 거래가 사실상 멈추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 휑한 거리에 상인들 '한숨'

5일 오후 방문한 주방거리. 길가에는 손님의 숫자보다 상인의 숫자가 많았다. 중고 물품을 구경하는 사람은 종종 보였지만 흥정이나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쌓여있는 물품들 사이로 상인들은 연신 부채질을 하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방거리 대로변에서 30년 넘게 가게를 운영한 최모씨(64)는 "이 시간이 원래는 피크타임이지만 요새는 유동인구가 줄어 하루 2~3팀이 오면 많이 오는 편"이라며 "현상 유지만 해도 다행이고 무더운 여름이 되면 손님이 더 줄 텐데 걱정이 된다"고 토로했다.

주방거리는 폐업 점포의 물건을 염가에 매입해 창업자들에게 되파는 시장이다. 전성기인 1980년대에는 거리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활발하게 거래가 이뤄졌다.

현재 상인들 대부분도 40년 가까이 한곳에서 영업을 이어온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올해가 역대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입을 모았다.

부부가 함께 36년간 칸막이 전문 가구점을 운영한 서모씨(68)도 폐업 또는 가게 축소를 알아보고 있다. 서씨는 "월세가 330만원인데 매출이 200만원도 안 되는 달이 많다"며 "코로나19 유행 때보다 더 힘들다. 바로 건너편 가게는 1년 넘게 비어있다"고 강조했다.

자영업자의 위기 상황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실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4월 노란우산 폐업 사유 공제금 지급액은 544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9% 늘었다. 폐업 사유 공제금 지급액이 지난해 1조2600억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찍은 후 올해도 증가 추세다.

■ 사라질 위기에 처한 '주방거리'

역설적으로 주방거리의 침체와 달리 황학동 전체의 임대료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다.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분기 평당 임대료가 12만8055원 수준이었지만 지난 1·4분기에는 20만8787원을 기록하며 2년 만에 60% 넘게 늘었다. 이는 인근 '힙당동'(힙플레이스+신당동) 상권이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힙당동은 신당역 사거리에서 북동쪽에 있는 이 지역을 통틀어 일컫는데, 행정 구역상으론 황학동이다. 최근 신당중앙시장을 비롯해 카페와 술집 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기를 모으며 젊은 층의 유입이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사정이 어려운 황학동 주방거리 상인들 입장에서는 임대료 상승이 곧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장사가 되지 않는데도 인근 상권 부상으로 덩달아 임대료가 상승하면 감당이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상인 최씨는 "젊은 사람이 늘고 인근에 젊은 카페나 술집이 생기며 이곳이 잠식되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또 오피스용 가구 상점을 운영하는 50대 윤모씨는 "최근 2030세대가 거리에서 자주 모습을 보이며 주방거리를 방문하는 연령대도 어려졌지만 구경하러 들린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코로나19 유행 전과 비교하면 매출이 3분의 1토막 수준이라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