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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무역갈등 덕 본다… 말레이 '동남아 실리콘밸리' 각광 [글로벌리포트]

세계 기업 몰려드는 첨단 제조허브
인텔, 1972년 페낭에 첫 해외공장
中 55개 기업 등 꾸준히 둥지 틀어
2019년부터 외국인 직접투자 폭증
반도체 매출 1224억弗… 세계 7%
고부가가치 제조업 목표로
후공정 기반 갖춰 동남아 선두 노릴 만
美, 中 관계 우호적… 기업 유치도 유리
'싱가포르 취업' 고숙련 인력 유출 심화

美·中 무역갈등 덕 본다… 말레이 '동남아 실리콘밸리' 각광 [글로벌리포트]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 속에 중국에 진출했던 많은 외국 기업들이 미국의 관세를 피하기 제조업 기지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에 편중된 해외 생산 거점을 분산시켜 다른 국가에도 동시 공장을 두는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까지도 미국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차이스 플러스 원 전략을 이용하고 있을 정도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더 많은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세금 감면을 비롯한 혜택 제공을 약속하고 있다. 반도체와 전기차(EV) 기업들은 공급망 강화를 위해 장점이 많은 동남아시아로 이전하고 있어 이곳이 미·중 무역 분쟁 틈을 이용해 이득을 얻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반도체와 태국의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인 업종으로 외신들이 주목하고 있다. 기업들의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으로 가장 혜택을 받고있는 국가로 말레이시아를 꼽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의 장점은 미국과 중국에 모두 우호적이라는 것이다.

지난 2019년부터 외국인 직접 투자(FDI)가 크게 늘면서 지난해에만 2013~2020년 합친 것 보다도 많은 601억링깃(128억달러·약 17조5000억원)이 투자됐다. 말레이시아의 제조업은 1990년대말 아시아 외환 위기와 중국과의 경쟁에 부딪히면서 주춤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이어온 반도체의 백엔드(후공정) 기반을 통해 밑바닥부터 시작하려는 동남아의 후발 국가들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함이 드러나면서 말레이시아에 대한 관심이 크게 쏠리기 시작했다. 중국이 반도체 세계 최대 생산국인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는 리스크는 말레이시아 반도체 산업 투자를 더 촉진시키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공급망 생태계는 미·중 무역 마찰 리스크를 피하려는 기업들을 유치하는데 유리한 여건이 되고 있다. 원산지가 말레이시아로 표기될 경우 미국이 중국산 수입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피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의 반도체 산업은 이미 1972년 인텔이 북부 페낭에 160만달러를 투자해 첫 해외 공장을 건설한 이후부터 꾸준히 발전해왔다. 페낭은 해수욕장과 다양한 음식, 여유로운 분위기로 마이크론과 인텔, AMS오스람과 인피네온 같은 반도체 업체들과 미국의 견제를 피하려는 중국 55개 기업들이 진출, '동양의 실리콘밸리'로 불리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지난해 반도체 업계의 매출이 5750억링깃(약 1224억달러·168조원), 수출량은 세계 6위(1226억달러)로 세계 시장의 7%를 차지했다. 전체 수출량의 20%가 미국으로 가고 있으며 특히 세계 반도체 패키징과 테스트 시장에서는 13%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반도체 산업을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 더 키운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활발했던 반도체 패키징과 테스트 위주에서 앞으로는 웨이퍼 제조 공정과 집적회로(IC) 설계 같은 고부가가치 제조도 활성화시킬 계획이다.

말레이시아는 지난 2021년부터 첨단산업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FDI)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인텔이 2021년 패키징 및 테스트 공장에 70억달러(약 9조5700억원)를 투자했으며 쿨림에 세번째 웨이퍼 공장을 건설한 독일 인피네온은 지난해 공장 확장을 위한 54억달러(약 7조3700억원)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는 첨단 기업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왔다. 지난 3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중소기업(SME) 미래의 날' 행사에 참석해 가진 기조연설에서 이브라힘 총리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 기업에 말레이시아 투자를 당부하면서 "중국 시장에 수출하려면 말레이시아에 제조 공장을 두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세미콘 동남아시아 2024'에도 참석해 연설에서 "오늘, 나는 우리나라가 가장 중립적이고 비동맹적인 반도체 생산지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더 안정적이고 회복력인 곳으로 만들 것임을 알린다"라고 말했다.

또 말레이시아 정부가 자국 반도체산업에 5000억링깃(약 1065억달러·약 147조원)을 추가로 투자하는 계획도 공개했다. 말레이시아 반도체 기업 옵스타(Oppstar) 공동창업자 탄춘찻은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인해 말레이시아에서 앞으로 10년 넘게 더 많이 제조할 수 있는 황금같은 기회가 올 것"이라며 반도체 산업 전망을 낙관했다. 이밖에 올해 들어 이브라힘 총리는 연 매출 규모가 2억1000만달러에서 10억달러 사이인 반도체 설계와 첨단 패키징 기업 10개를 선정해 재정 지원을 통해 더 키운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또 외국 기업들이 새로운 시설 건설을 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도 제공할 계획이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산업의 인재 부족 문제는 최근 수년간 심화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주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반도체 산업 유치를 위해 경쟁하고 있다. 아무리 투자 기업에 세금 감면 혜택을 줘도 숙련된 인력을 찾는 것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레이시아 국제통상산업 차관 옹키엔밍이 밝혔다.

더 좋은 전망과 높은 연봉을 찾아 인력들이 해외로 나가면서 말레이시아의 반도체 두뇌 유출은 큰 고민거리다.

2022년 조사에서 싱가포르에 취업 중인 말레이시아인 4명 중 3명이 고숙련자들로 두뇌 유출이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줬다.

매년 말레이시아에서는 반도체 엔지니어 5만명이 더 필요하나 매년 졸업하는 엔지니어는 약 5000명으로 이것으로는 부족한 상황이다.


말레이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반도체 투자가 늘면서 구인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앞으로 5~10년동안 약 50억달러(약 6조8300억원)를 투자해 새로 가동될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할 높은 수준의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 6만명을 양성할 계획이다.

말레이시아 반도체산업협회는 늘고 있는 수요에 맞춰 외국인 고용 허가도 검토 중이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