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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다 생떼" 억지 보험민원 年 3000건 ‘폭탄’ [악성민원에 멍드는 보험 산업 (1)]

작년 금감원 접수민원 10% 차지
법률적 정의 없어 대응에 소모전
금소법 악용… 보험사기와 연결도

"법보다 생떼" 억지 보험민원 年 3000건 ‘폭탄’ [악성민원에 멍드는 보험 산업 (1)]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손해보험업계 관련 민원 가운데 단순 임직원 태도 불만이나 법·제도적으로 불가능한 사항임에도 본인의 요구를 주장하는 억지주장 민원, 즉 악성민원이 3000건 이상으로 전체의 1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국내 보험회사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보험산업은 민원왕'이라고 직격한 가운데 그 이면에는 근절되지 않고 있는 악성민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악성민원에 대한 법률적 정의가 없다 보니 보험사는 이들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어 선량한 소비자와 보험사 모두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9일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금감원 접수민원(금감원 자체처리민원은 제외) 총 3만2772건 대비 억지주장 민원건수는 3070건으로 9.3%로 집계됐다.

손해보험협회 측은 "우리나라는 악성민원이라는 정의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금감원에 접수된 민원 중 각 보험사로 이관된 민원 가운데 억지성 민원만 따로 분류한 게 이 정도"라며 "금감원이 아닌 각사로 바로 접수된 민원까지 포함해 악성민원을 따져본다면 수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21년 3월부터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금융소비자의 권리가 더욱 강화된 만큼 금융소비자들에게 스스로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할 책무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규정은 선언적인 성격을 지닐 뿐 법령상 구체적인 별도의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 이에 소비자의 권리만을 강조하고 고의적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은 금융소비자들이 계속 생겨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금융소비자보호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이를 악용해 민원을 금융회사에 대한 압박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민원이 많은 보험사의 경우 악성 민원인에 대한 법적 대응보다는 이들의 요구를 수용해주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또 다른 악성민원이 양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다. 보험산업의 소비자 신뢰도가 타업권 대비 낮은 것은 이처럼 악성민원을 걸러낼 수 없는 구조 탓이기도 하다.

악성민원은 보험사기와도 직결되는데 보험사기범이 오히려 보험금을 주지 않으면 금감원에 민원을 넣겠다며 적반하장식으로 보상직원을 압박하기도 한다. 보험금이 과다지급되면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결국 다수의 선량한 소비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

민원처리 행정력이 분산되며 일반 소비자 민원처리기간이 늘어나며 소비자 민원처리 만족도 역시 저하된다. 실제 지난해 금감원 고객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민원·분쟁조정 업무에 대한 만족도는 61.6점이었는데 업무처리 지연 등의 이유로 전년 대비 10.1점 하락했다.


악성민원인으로 인해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보험사 직원들의 정신적·육체적 피해도 큰 상황이다. 이에 악성민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철 한국금융소비자학회 회장(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은 "현재 악성민원에 대한 명확한 정의, 세분화된 분류기준 등이 부재해 악성민원 대응에 과도한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고 있다"며 "금융당국 차원에서 악성민원의 정의, 사례별 대응방안 등을 담은 세부기준을 마련해 악성민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소비자가 정당하게 제기하는 민원에 더 힘을 쏟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padet80@fnnews.com 박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