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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회 휩쓴 극우, 판세 흔들 제 3세력으로 성장

9일 유럽의회 선거 개표, 기존의 중도 우파 EPP 1당 사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연임 가능성 커져
극우 정당들의 약진 뚜렷, 연합하면 제 3의 정치 세력 만들어
프랑스, 극우 약진에 조기 총선으로 승부수...벨기에 총리는 사임

유럽의회 휩쓴 극우, 판세 흔들 제 3세력으로 성장
유럽국민당(EPP) 소속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가운데)이 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당사에서 유럽의회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A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안보와 경제, 이민 등 여러 분야가 불안한 유럽연합(EU)에서 이달 치러진 선거 결과, 극우 정당들이 크게 약진하며 기성 정당들을 위협했다. 위협을 느낀 프랑스는 즉각 조기 총선으로 민심 수습에 나섰고 벨기에에서는 총리가 물러났다. 현지 매체들은 일단 우파 및 중도 진영이 지난 회기처럼 주류를 차지하겠지만 극우와 손을 잡아야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폰데어라이엔 연임 가능성
EU 27개 회원국에서는 지난 6~9일(현지시간) 사이 제 10대 유럽의회의 의원 720명을 뽑는 선거가 열렸다. 유럽의회는 EU의 입법을 담당하며 행정부 역할인 집행위원회의 예산을 심의 및 승인한다. 동시에 EU 전역에서 통하는 법안을 수정 및 제정할 수 있지만 집행위 고유 권한인 발의권을 대신 행사할 수는 없다. 미국 CNN은 개표일인 9일 보도에서 올해 유럽의회 선거 투표율을 잠정 추산한 결과 51%로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전했다.

의석 숫자는 국가별로 배정되어 있으며 96석을 가져가는 독일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은 81석을 배정받은 프랑스다. 선거는 유권자가 특정 정당에 투표하면 해당 정당에서 받은 표만큼 의원을 정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진행된다. 유럽의 주요 정당들은 성향에 따라 정치 그룹을 만들어 이번 선거에 참여했다.

10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 투표 종료 이후 출구조사와 10일 새벽 투표 결과를 종합한 결과 기존 집권당이었던 유럽국민당(EPP)이 720석 가운데 184석(약 25%)을 확보해 1당 자리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EPP는 독일 기독민주당(CDU)이 주도하는 우파 및 중도 정치 세력으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속한 당이다. 집행위원장은 27개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EU 이사회에서 결정하지만, 사전 협의에 따라 유럽의회에서 1당을 차지한 정치 단체의 대표를 우선 검토해야 한다. 각국 정상들은 17일 비공식 회의를 통해 지도부 구성을 시작하며 이달 27~28일 정기 정상회의에서 집행위원장 후보를 확정한다. 확정된 후보는 유럽의회의 인준 투표를 통과해야 한다.

2019년 취임한 폰데어라이엔은 9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모두 안정에 관심이 있고 강력하고 효과적인 유럽을 원한다"며 다른 정당들에게 자신의 연임을 지지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나는 첫 임기 동안 강력한 유럽이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의 목표는 친유럽, 친우크라이나, 친법치주의자들과 함께 이 길을 계속 나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의회 휩쓴 극우, 판세 흔들 제 3세력으로 성장
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국민전선(RN)의 대표 마린 르펜(왼쪽)이 당사에서 연설하고 있다.EPA연합뉴스

극우 진영 약진, 기성 정당 위협
이번 선거에서 제 2당은 좌파 및 중도 진영을 표방하는 사회민주진보동맹(S&D)으로 139석(약 19%)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외신들은 EPP와 S&D의 의석이 기존 숫자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강경우파 정치그룹 '유럽보수와개혁(ECR)', 유럽의회 내 극우 정치그룹인 '정체성과 민주주의(ID)'에 주목했다. 두 정당이 가진 기존 의석은 각각 69석, 49석이었지만 이번 선거로 각각 73석(약 10%), 약 58석(8%)을 확보할 것으로 추정된다. 두 정당이 연합하면 곧장 제 3당에 버금가는 정치 세력이 된다.

ECR은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형제들(FdI)', 스페인의 '복스' 등이 속한 정치그룹이다. ID에는 프랑스의 대표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이 대표로 있는 국민전선(RN)이 속해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6일 ECR과 ID 모두 이민자 통제 강화, 친환경 전환 저지, EU 권력 제한 등 비슷한 공약을 내세우고 있지만 특정 부분에서 이견이 있다고 지적했다. 멜로니 같은 경우 2022년 강력한 반(反)이민 공약으로 권력을 잡았지만 주류 우파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멜로니는 망명 신청자에 대한 거부를 완화하는 EU 차원의 타협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아울러 프랑스의 르펜은 멜로니에게 이번 선거에서 연대를 제안했지만 대답을 받지 못했다. 이외에도 멜로니는 우크라의 EU 가입을 찬성하지만 르펜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국가별 의석 숫자가 가장 많은 독일의 경우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약 16.5%로 득표율 2위를 차지했다. AfD는 올해까지 ID 소속이었으나 지난달 나치 친위대 옹호 발언으로 제명됐다.

유럽의회 휩쓴 극우, 판세 흔들 제 3세력으로 성장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오른쪽)이 9일(현지시간) 프랑스 북부 파드칼레주의 르투케파리플라주에서 영부인 브리지트 마크롱과 함께 유럽의회 투표를 하고 있다.로이터뉴스1

프랑스 하원 해산...유럽 정가 흔들려
기성 정당들은 이번 투표에서 극우가 약진하자 즉각 반응했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9일 대국민 연설에서 하원 해산을 선언했다. 이날 프랑스에서는 르펜이 속한 ID가 약 3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마크롱의 르네상스당이 속한 중도 성향 정치 단체 '자유당 그룹'의 득표율은 13%에 그쳤다.

마크롱은 9일 대국민연설에서 "나는 투표를 통해 여러분에게 우리 의회의 미래에 대한 선택권을 돌려드리기로 결정했다"며 "오늘 저녁 국회를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달 30일 1차 투표, 내달 7일 2차 투표를 알리는 법령에 곧 서명한다고 알렸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지난 2022년 6월 총선을 치른 지 2년 만에 다시 임기 5년의 하원의원 577명을 뽑아야 한다. 마크롱은 "지난 몇 년 동안 유럽의 진보에 반대해 온 극우 정당들이 대륙 전역에서 진전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국수주의자와 선동가의 부상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그리고 유럽과 세계 내 프랑스의 입지에 대한 위험"이라고 걱정했다. 이어 "여러분의 메시지와 걱정을 들었으며, 이를 무시하지 않겠다. 오늘의 결과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르펜은 이번 해산 소식을 환영하며 "이 역사적인 선거는 국민이 투표하면 국민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권력을 행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회 선거와 함께 자국 총선을 함께 치른 벨기에에서는 총리가 사퇴했다. 알렉산더르 더 크로 벨기에 총리는 9일 투표 잠정 집계 결과 자신이 이끄는 '열린자유민주당(Open VLD)'의 득표율이 약 7%에 그칠 것으로 추정되자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나는 이번 선거 운동의 얼굴이었다.
이번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 내일 총리로서 사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크로는 10일 벨기에 국왕에게 사의를 밝힐 예정이며, 후임이 결정될 때까지 임시 총리를 맡게 된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