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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왜 '헌법기관'인지 아시나요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고언
'의원=헌법기관' 자각해야
대표 부하나 당 부속품 아냐

[노동일 칼럼] 왜 '헌법기관'인지 아시나요
노동일 주필
지난 5월 30일.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KBS 라디오와 인터뷰를 가졌다. 전날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주재한 직후였다. 대담 기사의 제목은 "22대 국회, 극한 정치 벗어나려면 '의원=헌법기관' 기억해야"이다. "지금의 극한 정치를 어디부터 실타래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보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김 전 의장의 답이다. "저는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이라고 얘기할 때 제일 어깨가 으쓱하고 자긍심을 느끼시리라고 봅니다. 20만명의 유권자가 선택하신 대표니까요." 의원 각자가 국민의 대표로서 헌법기관임을 자각하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 당의 이익이 아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게 김 전 의장의 고언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게 '헌법기관'이라는 단어일 듯하다. 초선의원들도 곧 익숙해질 것이다. 자신의 권위를 증명하기 위해 수시로 내보여야 하는 신분증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헌법기관'은 헌법에 의하여 설치되고,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독자적인 권한을 부여받는 국가기관을 말한다. 헌법상 국회, 대통령, 대법원 등은 최고 헌법기관이다. 국회의원은 특이하다.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가진다. 헌재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헌법에 의하여 그 권한과 의무의 내용이 정해진 헌법기관"이다. 헌법조문을 보면 명확하다. 국회는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국회의원으로 구성하며, 임기가 4년인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 국회의원은 법률안 제출권이 있으며 불체포특권, 면책특권이라는 엄청난 특권을 누린다. 반면 법률이 정하는 직을 겸할 수 없고 청렴 의무,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할 의무, 지위남용금지 의무 등이 있다. 우리 헌법이 이처럼 세세하게 국회의원에 대하여 규정하는 것은 그 지위가 그만큼 중요함을 웅변한다.

현실은 어떤가. 국회의원들의 실제 존재는 헌법기관의 권위와는 거리가 멀다. 당 대표의 부하나 정당의 부속기관 정도밖에 안 돼 보인다. 재판과 수사를 받는 이재명 대표를 위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보이는 행태가 그렇다. 22대 국회에서 '방탄국회'는 더욱 공고해지고, 날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 "이화영이 유죄면 이재명도 유죄"라는 말은 대북송금 사건에서 이화영 전 경기도부지사의 변호인이 한 말이다. 재판부에 대한 겁박이 통하지 않자 이제는 노골적으로 의원들이 나서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관련 검사들을 수사하겠다는 특검법을 발의했다. '검사의 술자리 회유'라는 황당한 시나리오를 믿고(?) 검찰청사 앞에서 농성부터 하던 의원들이 주축이다. 거부권에 막힐 경우 검사 탄핵을 외치고 있다. 법 왜곡죄를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은 검사는 물론 판사들까지 처벌하겠다는 협박이다. 김건희 여사 종합(!)특검법이라는 초유의 법안도 발의했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도 재추진한다.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 단독 개원에 이어 법사위, 운영위를 포함한 일방적 원 구성까지 일사천리다. 그것도 못미더운지 대통령 탄핵과 임기단축 개헌을 방탄의 '최종병기'로 공언하고 있다.

헌법기관으로서 어깨가 으쓱하고 자긍심을 느낄 수 있을까.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행하는 직무에 해당할까. 당의 이익이 아닌 국민을 위한 정치라고 믿을까. 당 대표 방탄에 앞장서는 호위무사나 정당의 소모품으로 전락하도록 국민이 뽑은 건 아닐 것이다. 화급한 국가적 과제를 모두 팽개친 채 당 대표 사법리스크를 막기 위해 국법질서 파괴에 몰두하는 그들을 헌법기관으로 존중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국회의원 한 사람을) 20만명 정도의 유권자가 뽑는데 그 유권자의 95%는 당원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시민들입니다. 5%만 당원이거든요." 김 전 의장의 말이다.
지금의 극단 정치는 5%의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이다. 그런 정치에서 자긍심을 느끼기는 불가능하다. '헌법기관'임을 깨닫기 위해 '국회의원' 글자가 들어간 헌법 조문들만이라도 일독하기를 권한다. dinoh7869@fnnews.com 노동일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