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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옛 신문광고] 최초의 슈퍼마켓

[기업과 옛 신문광고] 최초의 슈퍼마켓
슈퍼마켓은 1930년 미국에서 처음 생겼다고 한다. 뉴욕 변두리 퀸즈의 자메이카 거리에서 '가격파괴'를 내걸고 오픈한 '킹컬렌'이란 이름의 매장이었다. 국내 슈퍼마켓의 효시는 1968년 6월 서울 중구 중림동에서 300평(약 990㎡) 규모로 문을 연 '뉴서울 슈퍼마켓'이다. 1964년 11월 문을 연 '한국슈퍼마켓'이 있었는데, 외국인 상대라 논외다. 1969년 12월 개점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사러가쇼핑센터'는 지금도 한자리에서 꿋꿋이 영업을 하고 있고 온라인몰까지 운영하는 장수 슈퍼마켓이다.

전통시장과 동네마다 있던 구멍가게, 싸전, 철물점, 이불점 등의 소매점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던 방식과는 다른 미국식 슈퍼마켓 도입은 쇼핑의 혁명과도 같았다. 뉴서울 슈퍼마켓 개점식에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서울시장 등 고위 인사들이 참석할 정도로 슈퍼마켓 출현은 빅뉴스였다. 대통령 내외는 이날 설탕, 빵, 돗자리 등 2675원어치를 샀다고 신문기사는 전하고 있다.

광고(경향신문 1968년 5월 17일자·사진)를 통해 당시 뉴서울 슈퍼마켓 운영방식과 판매물품을 확인할 수 있다. 6월 1일 개점한 1층과 지하에서는 고기, 생선, 채소, 술, 과자 등을 판매했는데 현재의 슈퍼마켓 매장 모습과 거의 같다. 뒤이어 7월 17일 2차로 문을 연 2층에서는 포목, 양복, 가구, 문구, 화장품, 시계, 서적 등을 판매했다. 슈퍼마켓과 백화점을 합쳐놓은 듯한 매장이었다. 광고에도 슈퍼마켓이라는 글자 위에 '종합시범백화점'이라는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처음에는 슈퍼마켓을 복합매장으로 꾸민 듯하다.

최초의 슈퍼마켓에는 지금과는 달리 매대마다 백화점처럼 판매원이 따로 있었다. 6월 27일자 광고를 보면 인기 코미디언과 가수들을 초청해 세일행사를 하면서 고객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달걀을 나눠준 것으로 돼 있다. 호텔에나 있는 도어보이 10명과 대졸 사원을 모집한다는 문구도 있다. 초창기 슈퍼마켓에서 도난사고가 자주 일어났고, 감시원이란 이색 직업이 생겼다. CCTV는 없던 시절이라 거울을 여러 곳에 설치해 놓고 감시했다. 관리사무실에는 '도둑장부'를 만들어 놓고 좀도둑을 잡으면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상습범은 경찰에 넘겼다. 뉴서울 슈퍼마켓이 폐점한 때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1970년대까지는 영업을 한 것으로 지면에서 확인된다. 그런데 대기업이 운영하는 서울 신문로의 한 마트에 '대한민국 최초의 슈퍼마켓'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이 자리는 2007년까지 고려쇼핑이 있던 곳인데 1973년 11월 1일 영업을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최초의 슈퍼마켓이라고 할 수는 없다.

1970년대에 들어 슈퍼마켓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물가가 급등하던 시기였던 만큼 정부의 유통구조 개선정책도 작용했다. 1971년 6월 8개의 점포를 가진 '새마을 슈퍼체인'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공익법인 형태로 출범했다.

그해 9월에는 한국슈퍼마켓도 한남슈퍼체인으로 체인화하는 등 정부 지정 슈퍼마켓 체인은 모두 7개에 이르렀다. 슈퍼마켓은 급속도로 늘어나 1978년 848개, 작은 슈퍼마켓인 연쇄점은 3만여개로 불어났다.

또 한 번의 유통혁명은 대형마트 출현으로 시작됐다. 1993년 11월 서울 도봉구 창동에 이마트 1호점이 문을 연 것이다. 옛날 슈퍼마켓들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 동네마다 있던 구멍가게들도 거의 다 사라졌다. 그 대신 SSM(Super Supermarket)으로 불리는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중간 크기의 마트, 편의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국내 최초의 편의점은 1982년 문을 연 롯데세븐 1호점이지만 2년 후 폐업했다.
1989년 개점한 세븐일레븐 올림픽점은 현존하는 최초의 편의점이다. 오프라인 마트의 호황기도 끝나가는 듯하다. 온라인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유통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