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클러스터’ 원대하나
갈등 많아 착공조차 못해
日 TSMC 공장 3년 걸려
정상균 논설위원
며칠 전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에 가봤다. 600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라는데 대체 어떤 곳인지, 공사가 어느 정도 됐는지 궁금했다. SK하이닉스가 중심이 되는 용인 원삼면과 삼성전자가 주축이 된 이동·남사읍 일대 등 2곳이다. 서로 20여㎞ 떨어져 있다.
용인 일반산단에 가까워지니 맨살을 드러낸 흙산이 보였다. 451만㎡(약 126만평)라는데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해발고도 100m가 넘는 부지를 도로에선 올려다봐야 했다. 흙을 퍼내고 실어 나르는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이 분주히 움직였다. 흙먼지가 날렸다. 도로 양쪽에는 3m 이상 되는 흰색 안전펜스가 둘러쳐져 있다. 교차로 등 일부는 차량을 통제했다. 무단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경고문도 보였다. 이곳에 SK하이닉스가 반도체 팹(Fab) 4기를 짓는다. 첫 공장을 내년 3월 착공, 2027년 준공 목표다.
삼성의 용인 국가산단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발표한 경기 남부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계획에 포함된 핵심부지다. 728만㎡로 삼성 평택캠퍼스의 2.5배에 달한다. SK산단과 달리 도로 등 접근이 용이했다. 용인테크노밸리 등과도 가까웠다. 도로 곳곳에 걸려 있는 '강제수용 결사 반대' 등의 현수막 정도가 이곳이 산단 개발부지라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이곳 산단에 삼성전자가 360조원을 투자해 첨단 시스템반도체 팹 6기를 짓는다. 200여개 협력사도 입주한다. 인허가, 환경평가 등 패스트트랙을 가동해 2026년 부지조성 공사에 착수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반도체 메가클러스터 청사진은 나무랄 데 없이 원대하다. 이대로 된다면 20여년 후 용인은 '꿈의 반도체 도시'가 된다. 하지만 아직은 조감도상의 그림일 뿐이다. SK산단 부지가 발표된 게 2019년이다. 주민 토지보상·이주 갈등이 길어졌다. 용수·송전, 발전 등 인프라 구축 합의도 늦어졌다. 착공도 수차례 미뤄졌다.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사이 일본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대만 TSMC 유치에 총력을 다했다. 오타 야스히코 일본경제신문 위원은 책(2030 반도체지정학)에서 "TSMC 유치에선 동맹국 미국과도 라이벌이었다"고 할 정도였다.
SK보다 2년 늦은 2021년 TSMC는 일본에 반도체공장 건설을 공식화했다. 3년 후인 지난 2월 규슈 구마모토현에 첫 공장을 준공, 10월부터 12~28나노 반도체를 양산한다. 구마모토 1공장 부지(21만㎡)가 작고 상당 부분 조성된 산업단지라는 점 등을 고려해 용인 산단과 단순 비교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쳐도 착공 20개월 만에 준공한, 세계가 놀랄 만한 추진 속도다.
관료주의가 팽배한 일본 정부는 1년 이상 걸리던 인허가 절차를 4개월에 끝냈다. 50년 이상 묶어둔 개발제한 규제까지 풀었다. 10조원 이상의 보조금도 지원했다. 자율주행 등 미래차에 쓰이는 6나노급 반도체를 생산하는 제2공장도 2027년 말 가동 목표로 올해 착공한다. 나아가 첨단 3공장도 검토 중이다. TSMC 2개 공장은 3400여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10년간 규슈 지역에 20조엔(약 175조원) 이상의 경제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한다. 반도체 패권을 한국에 빼앗긴 일본의 반격 아닌가. 일본이 공장 2개를 가동하는 새 우린 공장 하나 가동에 8년 넘게 걸리는 셈이다. 삼성전자의 용인 국가산단 첫 반도체 공장 착공이 2026년 말, 가동이 2030년인데, 이 또한 장담할 수 있을까.
반도체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윤 대통령도 "시간이 보조금"이라고 할 만큼 문제는 이행 속도다. 무관심하다가 총선 전에 “전폭 지원”을 외치던 국회는 하세월이다.
클러스터 송전망 인허가 규제 완화(전력망확충특별법) 관련 법도 폐기됐다. 정부와 여당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윤 대통령은 반도체 클러스터 이행 상황을 매일 들여다보길 바란다. 대통령 임기 내 용인 반도체 첫 공장 준공행사에 참석한다면, 이것만 해도 최대 공적이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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