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브래드 리틀의 '러브스토리'
"고달픈 인생,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답죠"
고통과 좌절이 우리를 감싸며, 더 이상 삶을 이끌어 가는 힘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 되기도 합니다. 한계를 넘어, 찬란한 인생의 순간을 찾아가는 이들의 여정을 담았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역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편집자주>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도통 결혼을 안한다. 일하느라 바빠 이성을 만날 시간도 없고, 연애니 결혼이니 신경쓰면 머리 아프고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아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고 한다.
역대 최저 혼인율의 시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애정을 주고받으며 요구되는 희생과 갈등은 '불필요한 감정소모'로 전락했고 헌신하는 삶에 대한 가치도 사라진 지 오래다. 모두가 사랑이 부재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2024년의 대한민국에,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진 남자가 있다. 연인과의 결혼, 그리고 그 결실로 맺어진 딸의 탄생은 그에게 있어 뮤지컬 속 음악과 스토리보다 더 감미로운 기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사진=브래드 리틀 공식 인스타그램
나이 많은 외국인 '돌싱' 사위, 외로웠던 1년의 설득
수려한 외모, 186㎝의 훤칠한 키, 국제 어워드 수상경력에 빛나는 세계적인 뮤지컬 배우인 브래드 리틀 씨. 예술가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란 그는 브로드웨이를 비롯한 월드투어를 포함해 <오페라의 유령>에 약 2800회 이상 출연한 세계 최고의 '팬텀'이다.
어느 여자라도 반할 만한 '스펙'을 가진 리틀 씨는 다만, 요즘말로 '돌싱(돌아온 싱글, 사별이나 이혼 따위로 다시 혼자가 된 사람)'이었다. 리틀 씨는 첫 번째 결혼을 '실패'했다.
"아, 제가 결혼 경험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시는군요. 솔직하게 얘기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부인과는 서로 일정이나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맞지 않았었어요. 제 직업적인 영향도 있겠죠. 항상 떨어져 지내야 하는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잘 될 수가 있겠나요. 서로 인생의 타이밍, 공유하는 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이별을 선택했습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나쁜 기억이죠"
실패한 결혼 이후 홀로 작품활동을 이어오던 리틀 씨는 한국인인 현재 아내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어 그녀와 남은 인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쳤다. 아내 또한 그를 반려자로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내의 부모님이었다. 중년의 미국인 돌싱 사위, 장인과 장모는 리틀 씨를 딸의 연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완고하게 반대했다.
"지금 아내와 저는 나이차도 많이 납니다. 아내는 아주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한국 가정에서 자랐고요. 그렇다 보니 장인 어른이 결혼을 완전히 반대하셨어요. 저와 아내의 관계를 알고 나서도 받아들이지 않으시더군요. 결혼 뿐만이 아니라 아내와 저의 사이 자체를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그래도 리틀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기에, 리틀 씨는 아내를 너무 사랑했다.
"1년 여의 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처가댁을 설득했고, 공연이라도 한 번 보러 오시라 부탁을 드렸어요. 마침내 가족들이 공연을 보러 왔죠. 그 날 장인 어른께 드릴 손편지를 한국말로 직접 한 글자 한 글자 적어서 전해드렸어요. '최고의 남편이 되겠다', 진심을 담았죠. 편지와 함께, 저의 공연을 감명깊게 본 장인과 장모께 결혼을 허락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느꼈어요.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사랑이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그들은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 끝에 웨딩마치를 울렸다.
/사진=손다영 에디터
고달픈 타지생활, '당신'이 있어 버틸 수 있다
결혼 이후 아내를 위해, 리틀 씨는 한국으로 이주해 정착하는 것을 선택했다. 더 많은 것을 함께 공유하고 더 많은 것을 함께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타지생활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리틀 씨에 따르면 그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매번 좌절감을 느꼈다. 식재료를 사기 위해 들른 대형마트에서, 배가 아파 방문한 약국에서, 화장실 부품이 고장 나 수리를 맡기기 위해 전화한 고객센터에서, 그는 늘 당황하고 헤매고, 곤혹스러워야만 했다. 세계 최고의 뮤지컬 배우지만, 타지에서는 주차권 한 장 받는 것조차 버거웠다.
"때로는 제가 가진 남성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떤 일이 생기든 언제나 언어적, 문화적 벽에 가로막혀 약자가 되지요. 억울한 상황도 생깁니다. 제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숨죽여야만 하는, 이를테면 취객의 시비따위가 그렇지요. 저도 답답하니 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싸우고 싶지만 싸울 수도 없어요. '외국인'이니, 무엇 하나 잘못 연루되면 추방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려야 하거든요. 항상 억눌려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제 주체성이 사라진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궁지에 몰릴 때마다 리틀 씨를 구원해준 건 그의 아내였다. 일상 속 사소한 문제부터 비자 발급과 관련된 일까지, 아내는 언제나 그를 위해 대변하고 항변해 모든 것을 해결해줬다. 항상 그를 위해 필요한 곳에 있어줬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죠. 그녀는 나의 보스(Boss), 나의 구원, 나의 기적입니다"
두 사람 슬하에는 4살배기 딸이 있다.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사진=브래드 리틀 공식 인스타그램
"완벽한 커플 아냐…굉장히 사랑하는 사이, 그게 전부"
리틀 씨는 자신과 아내에 대해 '완벽하지 않은 커플'이라고 설명한다. 모국어가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른 만큼 서로가 온전한 천생연분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되레 리틀 씨는 '언어의 벽'이 장점이 됐다고도 말한다.
"언어가 다르니까 서로 생채기를 낼 수 없는 경우도 있어요. 이를 테면 말다툼이 있을 때, 물론 톤과 감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서로가 사용하는 날선 단어들에 즉각 반응하지 않으니 시간이 지나면 감정은 가라앉지요. '화'라는 것은 풀리기 마련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각자의 단어들은 그저 사라지고 말죠"
이러한 과정에서 리틀 씨는 '기다림의 미학'을 배웠다고 한다.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려 하다 보면 시간적 차이가 존재하게 되고, 자연스레 '기다림의 시간'이 발생한다.
'빨리빨리', '편하게' 소통을 하려다 보면 많은 것들을 1차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지만,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서로의 언어를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스며드는 감정을 익히게 됐다는 것이다.
"기다림 속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어려움을 뚫고 나가고 있어요. 우리는 서로 굉장히 사랑하는 사이에요. 그렇지만 결코 쉬운 사랑이 아니죠.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값진 사랑과 삶이 됩니다"
리틀 씨의 인생은 아름다울까? 그는 이렇게 답한다.
"저의 인생 철학 중 하나인데요. '당신이 사랑받고 싶은 만큼, 누군가를 사랑하라'는 말이에요. 저는 사랑을 믿어요. 사랑을 믿기 때문에 저는 항상 승리(Victory)합니다. 사랑하기에, 인생은 아름다워요"
/사진=브래드 리틀 공식 인스타그램
rainbow@fnnews.com 김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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