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이제마는 조선 후기 때의 의원으로 사상의학을 창시했다. 왼쪽 사진은 이제마의 초상화로 손에는 그의 저서인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을 들고 있다. 오른쪽은 <본초강목>에 있는 오두부자(烏頭附子, 부자) 그림이다.
조선 후기의 이제마는 환자를 사상체질로 구분해서 치료했다. 그는 항상 “사람마다 타고난 체질이 다르므로 같은 병이라도 그 치료가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마는 사상체질의학을 창시한 장본인이다.
이제마는 당시 11세 된 사내아이의 병을 진찰한 적이 있었다. 사내의 아버지는 “이놈이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나면서 땀이 저절로 흐르고 대변도 굳어서 나오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이제마는 “아이의 평소의 대변은 어떠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사내아이의 아버지는 “이놈은 평소에 걸핏하면 설사를 했습니다. 특히 생과일이나 채소를 먹으면 더 심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할까봐서 걱정을 하고는 했습니다. 또한 평소에 잔걱정이 많고 때때로 밥을 먹을 때 식은 땀을 흘리고 배앓이를 자주 했습니다.”라고 했다.
이제마는 사내아이가 원래 속이 냉한 소음인 체질로 판단했다. 상체가 마른 체형을 보고서도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소음인임을 확신했다. 그래서 이번에 나타난 두통, 발열, 변비 등의 열증(熱證)은 무시하고 황기, 계지, 백작 등 소음인 표증약으로 발산을 시켰다. 그러나 4~5일이 되어도 두통과 발열이 낫지를 않았다. 6일째 되던 날 아침, 사내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부랴부랴 약방을 찾았다.
사내의 아버지는 “아들놈이 대변을 보지 못한지가 4~5일이 되었고, 소변 빛이 붉고 깔깔하여서 잘 나오지 않아 한 번에 두세 숟가락 밖에 되지 않습니다. 소변을 보는 횟수도 하루 동안에 두세 번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의원님의 처방을 복용했는데도 더 나빠진 것 아닙니까?”라고 걱정하는 것이다.
이제마는 “아들을 오늘부터 약방에 머물게 해서 내가 자주 진찰해 보겠네.”라고 했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입원이었다.
그러면서 다른 환자들 진찰하는 가운데도 간간이 사내아이를 진찰을 해보니 오한증은 없으면서 발열을 하며 땀이 흘러나오는 횟수는 몇 차례 불규칙하게 흘렀다. 인중(人中)에는 혹 땀이 있는 때도 있고 또는 땀이 없는 때도 있었다. 그런데 사내아이에게 땀이 날 때 보면 얼굴과 온몸에 줄줄 흐르고 있었다. 팔다리를 만져보니 싸늘했다. 사내아이가 소변을 거의 보지 못한 것은 땀을 많이 흘려서 탈수에 빠진 것이다.
이제마는 불현듯 ‘한다망양증(汗多亡陽證)의 증후로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비로소 진실로 위급한 병증임을 알았다. 한다망양증(汗多亡陽證)은 땀을 비 오듯이 쏟으면서 양기(陽氣)가 고갈되는 병증을 말한다. 땀이 그치지 않으면 탈진과 탈수에 빠지고 인사불성에 이르고 사망하기도 하는 위급한 병증이다. 한다망양증은 현대의학적으로 보면 심각한 자율신경실조증과 함께 심부전과 관련된 병증으로 볼 수 있다.
이제마는 급히 파두(巴豆) 한 알을 껍질을 벗겨서 사내아이에게 먹였다. 그리고 미음을 연하게 따뜻하게 해서 조금씩 자주 먹게 했다. 파두는 버들옻과 식물인 파두나무의 열매로 대열(大熱)한 약성을 가진 약재다. 소음인 냉적(冷積)이나 변폐(便閉)에 사용한다. 독성이 강한 약재지만 우선 급하게 변통(便通)을 시켜야 했다.
이제마는 그리고 나서 다시 황기계지부자탕(黃芪桂枝付子湯)을 처방했는데, 여기에 다시 부자를 1돈을 넣고 달여서 2첩을 연달아서 복용하도록 했다. 황기계지부자탕은 황기, 계지, 백작, 당귀, 자감초, 부자, 생강, 대조로 구성된 처방으로 원 처방에 부자가 포함돼 있었지만 여기에 다시 부자를 추가한 것이다.
옆에 있던 사내아이의 아버지가 “어린아이에게 독한 부자를 너무 많이 쓰시는 것 아닙니까?”하고 걱정이 된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나 이제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부자를 증량한 것은 그만큼 심각한 망양증으로 판단한 것이다. 부자(附子)는 대열(大熱)하면서 대독(大毒)한 약재로 독성이 강하기 때문에 수치(修治)를 해서 사용해야 한다.
소음인 보양제로 많이 사용되는데, 적중하면 기사회생의 공이 있으나 체질이나 병증에 맞지 않으면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임상에서는 소음인이라도 고질적인 냉증(冷症)이나 망양증(亡陽證)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 부자는 망양증에 강심제로 작용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날 정오가 지나면서 사내아이는 대변이 통하고 땀이 줄면서 소변도 약간 맑아지고 양도 조금 많아졌다.
사내아이가 병을 얻은 지 7일이 되었다. 이제마는 사내아이의 증상이 어느 정도 호전을 보이자 증량된 부자를 중지하고 황기계지부자탕 1첩을 2일간 나누어 먹게 하였다. 처음에 부자를 추가한 처방을 하루 2첩 복용하던 것을 부자를 줄이고 1첩으로 2일 동안 복용하게 한 것이니 부자의 복용량을 8분의 1로 줄인 것이다.
그런데 처방용량을 줄이고 나자 이틀 후 사내아이의 증상은 다시 심해졌다. 그날 오전 11시경부터 사내아이는 다시 발작하여 오한증은 없이 발열하면서 땀을 몹시 흘리고, 소변은 빛이 붉고 깔깔하며 대변은 굳어서 나오지 않고 온 얼굴에 푸른빛을 띠고 간간이 마른기침을 했다. 병세가 더욱 극심해진 것이다.
그래서 다시 급히 파두 한 알을 껍질을 까서 먹이고 이번에는 인삼계지부자탕(人蔘桂枝付子湯)에 인삼 5돈, 부자 2돈을 물에 넣어 달여서 2첩을 연달아 복용시켰다. 그랬더니 해질 무렵이 되어서 대변을 비로소 통하고 소변은 조금 많아졌으나 빛깔이 붉은 것은 전과 같았다. 인삼과 부자를 증량하니 증세가 호전되는 것이다. 아이의 병증이 소음인 망양증이 맞다는 것이 처방으로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그래서 또다시 인삼계지부자탕에 인삼 5돈, 부자 2돈을 물에 달여서 1첩을 먹이니 그날 밤 10시쯤 되어서 사내아이는 모로 눕기는 하나 머리를 들지는 못했다. 기운이 없는 듯 했다. 그러고는 가래를 한두 숟갈쯤 토하더니 기침도 곧 멎었다.
병을 앓은 지 10일째 날 또다시 인삼계지부자탕을 인삼 5돈, 부자 2돈 하여 3첩을 썼더니 죽을 두세 숟갈을 먹고 매번 약을 먹은 후에는 몸이 식고 땀이 멎었다. 소변도 조금씩 많아지면서 대변도 잘 통하였다. 다음 날에도 이 처방으로 2첩을 쓰니 죽을 반 사발이나 먹었다. 다음 날에도 이 처방으로 2첩을 썼더니 죽을 반 사발도 더 먹었다.
발병한 지 12일째 되던 날, 사내아이는 이제 방 안에서 스스로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기력이 많이 회복이 되었고, 식은 땀은 없어지고 대소변을 시원스럽게 잘 통했다.
발병 13일이 되는 날에는 일어나서 문밖에 나가 걷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힘이 없는 듯 금세 마루에 다가와 앉아 있었다. 머리와 얼굴은 잘 들지 못했다. 이제마는 다시 처음에 썼던 황기계지부자탕에 부자를 1돈씩 넣고 매일 2첩을 복용케 하였다. 이후로 7~8일이 되자 머리와 얼굴은 조금은 들기는 하지만 얼굴이 부었다. 또 매일 2첩씩 7, 8일을 썼더니 고개도 잘 들고 얼굴의 부종도 내렸다. 그 후에도 이 처방대로 매일 2첩씩 썼다.
사내아이가 망양증이 생긴 날로부터 병이 다 낫기까지 1개월이 조금 지났는데, 그동안 부자를 쓴 분량이 모두 8냥이었다. 성인으로서도 감당해 내기 어려운 용량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마도 부자를 쓰기를 두려워했다면 사내아이는 죽었을 런지도 모른다.
대독(大毒)한 부자라도 적합하다면 어린아이에게 8냥이라도 명약이 될 것이고, 어른이라도 맞지 않는다면 1냥이라도 독약이 될 것이다. 항간의 ‘의자(醫者)는 의야(意也).’라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 같다.
* 제목의 ○○은 ‘부자(附子)’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동의수세보원> 嘗治, 少陰人, 十一歲兒, 汗多兦陽病, 此兒, 勞心焦思, 素證, 有時以泄瀉爲憂, 而每飯時, 汗流滿面矣. 忽一日, 頭痛發熱, 汗自出, 大便秘燥. 以此兒, 素證, 泄瀉爲憂, 故頭痛身熱, 便秘汗出之熱證, 以其反於泄瀉寒證, 而曾不關心, 尋常治之, 以黃芪ㆍ桂枝ㆍ白芍藥等屬, 發表矣. 至于四五日, 頭痛發熱不愈. 六日平明, 察其證候, 則大便燥結已四五日, 小便赤澁二三匙, 而一晝夜間, 小便度數不過二三次, 不惡寒, 而發熱, 汗出度數, 則一晝夜間二三四次不均, 而人中, 則或有時有汗, 或有時無汗, 汗流滿面滿體, 其證可惡. 始覺汗多兦陽證候, 眞是危證也. 急用巴豆一粒, 仍煎黃芪桂枝付子湯, 用付子一錢, 連服二貼, 以壓之. 至于未刻, 大便通, 小便稍淸, 而稍多. 其翌日, 卽得病七日也. 以小兒付子太過之慮, 故以黃芪桂枝付子湯一貼, 分兩日服矣. 兩日後, 其兒, 兦陽證, 又作, 不惡寒, 發熱, 汗多, 而小便赤澁, 大便秘結如前, 面色帶靑, 間有乾咳, 病勢比前太甚. 其日卽得病九日也, 時, 則巳時末刻也. 急用巴豆一粒, 仍煎人蔘桂枝付子湯, 用人蔘五錢, 付子二錢, 連二貼, 以壓之. 至于日晡, 大便始通, 小便稍多, 而色赤, 則一也, 又用人蔘桂枝付子湯, 人蔘五錢, 付子二錢, 一貼服矣. 至于二更夜, 其兒, 側臥, 而頭不能擧, 自吐痰一二匙, 而乾咳仍止. 其翌日, 又用人蔘桂枝付子湯, 人蔘五錢, 付子二錢, 三貼, 食粥二三匙, 每用藥後, 則身淸凉, 無汗, 小便稍多, 而大便必通. 又翌日, 用此方二貼, 食粥半碗. 又翌日, 用此方二貼, 食粥半碗有餘, 身淸凉, 自起坐房室中, 此日, 卽得病十二日也. 此三日內, 身淸凉, 無汗, 大便通, 小便淸而多者, 連用付子二錢, 日二三貼之, 故也. 于十三日, 又起步門庭, 而擧頭不能仰面, 懲前小兒付子太過之慮, 用黃芪桂枝付子湯, 用付子一錢, 每日二貼服. 至于七八日, 頭面, 稍得仰擧, 而面部浮腫, 又每日二貼服. 至于七八日, 頭面, 又得仰擧, 而面部浮腫, 亦減. 其後, 用此方每日二貼服, 自得病初, 至於病觧, 前後一月餘, 用付子, 凡八兩矣. (일찍이 소음인 11세 된 아이가 한다망양병을 앓는 것을 치료한 일이 있다. 이 아이는 평소에도 노심초사하는 편이며 때때로 설사하는 것이 걱정이었으며, 밥을 먹을 때마다 온 얼굴에 구슬 같은 땀을 흘린다. 그러다가 하루는 갑자기 두통, 발열하면서 땀이 저절로 흐르고 대변도 굳어서 불통하게 되었다. 이 아이의 평소 설사증을 걱정했기 때문에 두통, 신열, 변비, 한출 등의 열증은 한증인 설사와 반대되므로 관심을 두지 않고 예사로 치료하여 황기, 계지, 백작약으로 발표만 해 주었더니 4, 5일이 되었어도 두통, 발열이 낫지 않는 것이다. 6일이 되던 날 아침에야 그 병세를 자세히 살펴보니 대변이 굳어서 못 본 지가 이미 4, 5일이 되었고 또 소변 빛이 붉고 깔깔하여서 잘 나오지 않아 한 번에 두세 숟갈 밖에 되지 않는데다가 소변을 보는 횟수도 하루 동안에 두세 번 밖에 되지 않았다. 오한증은 없으면서 발열을 하며 땀이 흘러나오는 횟수는 하루에 2, 3, 4차로서 불규칙하였다. 인중에는 혹 땀이 있는 때도 있고 또는 땀이 없는 때도 있었다. 그리고 땀이 얼굴과 온몸에 줄줄 흐르고 있으니 그 병이 과연 나쁜 것이라 비로소 한다망양병의 증후란 것을 깨닫고 보니 진실로 위급한 병증인 것이다. 급히 파두 한 알을 거각하여 먹이고 거듭 황기계지부자탕을 쓰는데 부자를 1돈을 넣고 달여서 2첩을 연복케 하여 병을 눌러놓았더니 오후 1시부터 3시 사이에 대변이 통하고 소변도 약간 맑아지고 양도 조금 많아졌다. 그 다음날은 병을 얻은 지 7일이 되는 날이다. 그 동안에 소아에게 부자를 너무 과하게 쓰지 않았는가 걱정이 되므로 황기계지부자탕 1첩을 2일간 나누어 먹게 하였더니 이틀 후 그 아이의 망양증이 다시 발작하여 오한증은 없이 발열하면서 땀을 몹시 흘리고, 소변은 빛이 붉고 깔깔하며 대변은 굳어서 전번과 같이 통하지 않고 온 얼굴에 푸른빛을 띠고 간간히 마른기침을 하였다. 병세가 전번에 비하여 극히 심하게 된 것이다. 그 날은 그 아이가 병을 얻은 지 9일이 되는 날이고 시간은 상오 11시경이었다. 그리하여 급히 파두 한 알을 거각하여 먹이고 이번에는 인삼계지부자탕을 써야 되겠기에 인삼 5돈, 부자 2돈을 물에 넣어 달여서 2첩을 연복시켜서 병을 눌러놓았더니 해질 무렵 되어서 대변을 비로소 통하고 소변은 조금 많아졌으나 빛깔이 붉은 것은 전과 같았다. 또다시 인삼계지부자탕에 인삼 5돈, 부자 2돈을 물에 달여서 1첩을 먹이니 그날 밤 10시쯤 되어서 그 아이가 모로 눕기는 하나 머리를 들지는 못하고 저절로 가래를 한두 숟갈쯤 토하더니 기침도 곧 멎었다. 그 다음날 또다시 인삼계지부자탕을 인삼 5돈, 부자 2돈 하여 3첩을 썼더니 죽을 두세 숟갈을 먹고 매번 약을 먹은 후에는 몸이 식고 땀이 없어졌다. 소변도 조금씩 많아지면서 대변도 잘 통하였다. 또 그 다음 날에도 이 처방으로 2첩을 쓰니 죽을 반 사발이나 먹었다. 또 그 다음 날에도 이 처방으로 2첩을 썼더니 죽을 반 사발도 더 먹었다. 몸이 식으면서 방 안에서 스스로 일어나 앉았다. 바로 이날은 병이 생긴 지 12일이 되는 날이다. 이렇게 3일 동안에 몸이 맑고 개운해지면서 땀이 없어지고 대변이 잘 통하고 소변이 맑으면서 많아지게 된 것은 부자 2돈을 넣고 하루에 두세 첩씩 연 3일 동안에 계속 썼기 때문에 그와 같은 좋은 효과를 본 것이다. 13일이 되는 날에는 또 일어나서 문밖에 나가 걷기도 하나 힘이 없어서 머리와 얼굴을 잘 들지 못한다. 이것은 소아에게 부자를 너무 과하게 쓴 때문으로 생각되어 황기계지부자탕에 부자를 1돈씩 넣고 매일 2첩을 복용케 하여 7, 8일이 되자 머리와 얼굴은 조금은 들기는 하지만 얼굴이 부었다.
또 매일 2첩씩 7, 8일을 썼더니 얼굴을 더욱 잘 들고 얼굴에 부종도 내렸다. 그 후에도 이 처방대로 매일 2첩씩 썼다. 이 한다망양병이 생긴 날로부터 병이 다 낫기까지 1개월이 조금 지났는데 그동안 부자를 쓴 분량이 모두 8냥이었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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