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과 산재보험 등 주요 사회보험 통일적인 법해석
"공단의 재정 확보를 위해 피해자에게 가장 불리한 해석이 정당화될 수 없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국민연금 손해배상청구소송 대위 사건에서도 '공제 후 과실상계설'을 인정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이 나왔다. 이로써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등 주요 사회보험에서 통일적인 법해석이 이뤄지게 됐다. 대위는 채무자가 아닌 사람이 대신 채무를 변제하고 구상권을 취득하면서 채권이 넘어가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20일 국민연금공단이 교통사고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원고승계참가인으로 참가한 사건에서 공단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2016년 1월 경남 사천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중 B씨가 운전하던 택시에 부딪혀 사지마비 부상을 당했다. 1심은 B씨가 A씨에게 손해배상금 6억9000만원 지급을 명령했다.
이후 공단은 A씨에게 장애연금 2650만원을 준 뒤 국민연금법에 의거해 B씨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 행사했다. 공단은 이 과정에서 ‘상계 후 공제’ 방식을 적용, 대위 범위에 대해 공단이 부담한 장애연금 전액을 청구했다. 그러면서 2심에 원승승계참가인으로 참가했다.
그러나 2심은 공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상계 후 공제’가 아니라 ‘공제 후 상계’ 방식에 따라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공단의 손해배상청구권 대위 범위는 장애연금 전액이 아니라 가해자의 책임비율 60%에 해당하는 금액인 1590만원만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쟁점이 된 ‘상계 후 공제’와 ‘공제 후 상계’는 명확히 구분된다. 말 그대로 ‘상계 후 공제’는 피해자의 과실(책임) 비율을 먼저 고려(과실상계)한 뒤 국민연금으로부터 받은 금액을 공제한 것이고, ‘공제 후 상계’는 그 반대다.
예컨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100만원의 손해를 입혔고 피해자의 과실(책임)비율이 30%인 사건에서 국민연금이 피해자에게 40만원을 장애연금을 지급했을 때 ‘상계 후 공제’는 전체 손해 100만원-30만원(피해자 책임비율 30%)-40만원(장애연금)으로 계산한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추가로 30만원을 받을 수 있다. 피해자는 자신의 책임비율을 제외한 70만원을 받는다는 의미다.
여기서 공단은 가해자가 배상해야 할 70만원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청구 가능한 30만원을 뺀 40만원을 받을 수 있으므로 결국 장애연금 전액 회수가 가능하다.
그러나 ‘공제 후 상계’가 되면 100만원에서 장애연금 40만원을 우선 제외하고 계산에 들어간다. 즉 남은 60만원에서 피해자 책임비율 30%를 넣으면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42만원을 받게 되고,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82만원(40만원+42만원)을 보상받는다.
다만 피해자 보상금이 늘어난 만큼 공단이 챙길 수 있는 금액은 줄어든다. 가해자가 배상해야 할 70만원에서 42만원 공제한 28만원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장애연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없다.
따라서 가해자의 배상 총액에는 변함이 없지만 어느 것을 적용하는지에 따라 피해자와 공단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달라진다.
공단이 상고했지만, 대법원 역시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국민연금공단이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하는 경우 그 범위는 가해자의 손해배상액을 한도로 한 연금급여액 중 가해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제한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국민연금법 문언만으로 대위 범위를 반드시 공단이 부담한 ‘연금급여액 전액’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을 위한 국민연금법의 입법 목적, 국민연금 제도의 사회보장적 성격은 대위 범위의 판단에도 고려돼야 하고, (공단의) 재정 확보를 위해 피해자에게 가장 불리한 해석이 정당화될 수도 없다”고 밝혔다.
또 “가해자와 피해자의 책임이 동시에 있을 경우 적어도 ‘연금급여액 중 피해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금액’만큼은 공단이 피해자를 위해 부담할 비용이자 피해자가 정당하게 누릴 수 있는 이익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공단의 대위 범위는 연금급여 중 가해자의 책임비율 부분으로 제한하는 것이 이해관계를 공평하게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부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최근 건강보험, 산재보험에 이어 국민연금 사안에서도 ‘공제 후 과실상계설’로 채택해 피해자가 추가적인 손해보전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면서 “국민연금의 재산권적 성격과 사회보험 성격을 조화롭게 고려하며 공단과 피해자 사이의 형평을 도모했다는 데에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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