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돌파구는 있다 (下) 얼어붙은 내수 살려라
반도체·조선·차 중심 수출 호조
근로자 실질임금 줄고 물가 상승
가계 소비여력·기업 투자 감소
정부, 삭감했던 R&D예산 확대
올해 고물가·고금리 여파로 내수는 주춤하겠지만, 올해 하반기 수출은 정유·2차전지를 제외한 13대 주요 산업에서 일제히 증가할 전망이다. 반도체와 조선, 자동차를 중심으로 호조세를 이어가며 올해 정부가 목표한 수출 7000억달러 달성도 무리가 아니다. 다만 실질소득은 감소하고 있고, 물가흐름도 여전히 불안하다. 금리인하 외에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는 지난해 감축한 R&D예산 확대를 추진해 중장기적인 산업경쟁력 확대를 노릴 방침이다.
■수출 역대 최대 7000억달러 노린다
24일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2024년 하반기 경제·산업 전망'에 따르면 올해 수출은 전년동기 대비 8.3% 증가한 6848억달러(943조3120억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연초에 산업부가 목표로 제시한 연 7000억달러에는 못 미치는 수치다. 하지만 지난 2022년 역대 최고치였던 6836억달러(941조6590억원)를 뛰어넘는 수치다.
품목별로는 13대 주력산업(자동차·조선·2차전지·바이오헬스·일반기계·철강·정유·석유화학·섬유·정보통신기기·가전·반도체·디스플레이)에서 고르게 증가해 두자릿수 증가율(10.5%)이 기대된다. 정유와 2차전지를 제외한 대다수 산업에서 상반기(11.8%)에 이어 하반기(9.3%)에도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봤다.
올해 세계적으로 하반기에는 주요 IT제품 교체주기가 도래하고, 글로벌 기업의 투자 확대로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설비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국 인프라 투자 증가세가 지속되겠지만 경기회복이 주춤하고 국제정세 불안 등 부정적 요소도 상존한다.
업종별로는 반도체가 26.3% 높은 성장세가 예상된다. 연간 수출실적으로는 전년 대비 35.9% 증가할 전망이다. 메모리반도체 단가가 오르고 IT기기와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 등으로 업황이 회복된 영향이다. 반도체는 최근 50%를 넘는 강한 회복세를 보였으며, 연말까지 1300억달러를 넘는 수출 규모를 기록할 전망이다. 조선 수출은 전년 대비 21.5% 증가할 것으로 봤다. 지난 2021년 높은 가격으로 수주한 선박들이 차례로 인도를 시작하게 된다. 자동차 수출도 수요가 꾸준히 성장하는 가운데 하이브리드차 경쟁 우위를 확보한 덕에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3% 늘어난 480억달러(약 66조960억원)로 예측했다.
박성근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올해 반도체 업황을 꽤 좋게 보는 만큼 하반기에 물량 효과가 예상보다 더 잘 나온다면 연 수출 7000억달러 목표에 더 근접한 수준까지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내수, 경기흐름 핵심 변수로 부상
수출 등 산업 전반에 온기가 퍼지고 있지만 내수는 하향곡선이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3고(高)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4월 사업체 노동력 조사결과'에 따르면 임금상승률이 인플레이션에 못 미치면서 올 1~3월 상용근로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371만1000원이었다. 전년동기 대비 1.7% 줄었다. 근로자 실질임금은 지난 2022년부터 줄었다. 2022년 -0.2%, 2023년 -1.1%였다. 올해까지 줄면 3년째 감소다.
작황부진에 따른 사과 등 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2월(3.1%)과 3월(3.1%) 두달 연속 3%대를 기록했다. 4월은 2.9%로 간신히 2%대를 찍었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 역시 3·4분기에서 4·4분기로 더 미뤄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 기대 후퇴와 주변국 통화가치 절하 등의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은 17개월 만에 1400원 선을 터치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 지속된다면 가계의 소비여력과 기업의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금리인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KDI는 지난 11일 '경제동향 6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높은 수출 증가세에 따라 경기가 다소 개선되고 있지만 내수는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회복세가 가시화되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가계와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이 지속 상승하는 등 고금리 기조는 내수부진의 주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고금리가 계속될 경우 경기회복 불씨가 약해질 수 있는 만큼 기준금리를 미국의 금리인하와 관계없이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R&D예산 확대로 국가경쟁력↑
금리인하 외에 묘수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정부는 지난해 삭감했던 R&D예산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당장 실효적인 효과는 적겠지만 R&D예산 확대가 중장기적 산업경쟁력 확대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R&D 예타를 전면 폐지하고 1000억원 이상 대규모 사업의 경우에만 새로운 사전 검토·심의 제도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기존에 최소 2~3년 이상이 소요되던 R&D사업 착수 기간이 수개월~수년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정부의 기대다. R&D예산 자체의 확대도 기대된다. R&D 예산은 지난해 31조1000억원에서 올해 26조5000억원으로 14.8% 삭감됐다.
내년 R&D 예산의 관전 포인트는 30조원을 넘어 역대 최대 규모가 될 것이냐는 것이다. 특히 윤 대통령이 강조해 온 '3대 게임체인저' 인공지능(AI), 양자, 첨단바이오 예산 증액이 관건이다. 2034~2035년 첫 상용화 계획이 발표된 소형모듈원자로(SMR) 예산도 증액이 예상된다.
leeyb@fnnews.com 이유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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