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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2년째 근무하는데 외국인은 신용대출 안된대요"[200만 외국인시대, 갈길 먼 K금융 (上)]

언어 장벽에 금융거래 불편함 호소
외국인전용 앱은 한글로 인증 요구
유학생 한도제한에 은행 찾아 납부
외국인 고객 신용평가 방안 찾아야

"한국에서 12년째 근무하는데 외국인은 신용대출 안된대요"[200만 외국인시대, 갈길 먼 K금융 (上)]
외국인 금융소비자 A씨가 한 시중은행 모바일뱅킹 앱을 이용하기 위한 가입절차 중 한국어로 뜬 '본인인증'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은행이 외국인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본인인증의 경우 한국어로 팝업 창이 떠서 본인 인증 절차를 넘어가기 어려웠다. 사진=김나경 기자

#.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에 온 지 5년 차인 올레샤씨(46)는 통장과 카드를 개설하기 위해 한 시중은행 특화점포를 찾았다. 충남 아산 테크기업에서 일하는 올레샤씨는 "전에는 남편, 친구를 통해 은행 카드 발급 등을 했는데 지금은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면서 "내 이름으로 된 카드를 만들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일하는 베트남 출신 황당흥씨(34)는 외국인등록증을 새로 받거나 비자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은행을 찾아야 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베트남으로 송금을 할 때도 은행 지점에 왔다가, 지금은 베트남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 앱을 통해 해외 송금을 하고 있다.

#. 한국 대기업에서 12년째 근무하고 있는 자 디러즈씨(39)는 자동차를 사기 위해서 신용대출을 받으려고 했지만 회사 내 은행 지점에서도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받을 수 없었다. 자 디러즈씨는 "영주권이 있어도 (시중은행이 아닌) 상호금융금고에서만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한국에서 12년째 근무하는데 외국인은 신용대출 안된대요"[200만 외국인시대, 갈길 먼 K금융 (上)]

시중은행들이 국내 거주 외국인 260만 시대에 맞춰 빠르게 증가하는 외국인 고객을 잡기 위한 편의성을 높인 금융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지만 외국인 금융소비자는 여전히 금융거래에 불편함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특화점포 '오픈런'

23일 본지가 국내 거주 외국인들을 온·오프라인에서 취재한 내용을 종합하면 외국인 금융소비자는 주로 '언어장벽'에 따른 불편함을 겪고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일하면서 임금을 받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은행 통장을 만들고 체크카드를 발급하기 위해 주말에 문을 여는 외국인 특화지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정착 초기 휴대폰 개통이 안 된 경우 비대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불가능한 데다 외국인등록증이 발급되면 실명번호 등록 등을 위해 은행 지점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외국인 특화점포가 서울 외 지역에 몰린 데다 이마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유학생 마리아씨는 "한국 대부분 은행이 한국어로만 정보를 제공하고 대학교 주변 은행에서도 영어를 하는 직원이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은행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라고 전했다.

게다가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서울에 있는 대다수 지점은 한국어로만 운영되면서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은 외국인은 한국인 지인과 동행하지 않으면 간단한 금융거래도 불편한 실정이었다. 일반 지점에서는 고객 서명이 필요한 서류도 대부분 국어로 제공돼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서명을 하면서 불안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3년째 근무 중인 프랑스 직장인 마리씨(27)는 "서류에 제 명의로 사인을 해야 하는데, 한글로만 제공되니까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어 사인을 정말 해도 될지 모르겠다"면서 "영어 서류라도 제공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근 국민통합위원회에서는 금융접근성이 취약한 고객군에 외국인을 포함, 시중은행들이 공동으로 외국인 특화점포를 서울에 운영하는 것을 권고하는 안을 논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외국인 고객 대안신용평가 개발 필요

외국인 고객용 전용 앱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금융 서비스도 예금 조회, 카드 발급, 외화 송금 등으로 제한돼 운영되고 있다. 예·적금 가입 외 신용대출 서비스는 외국인 금융소비자는 아예 받을 수 없다.

실제 4대 시중은행 중에 현재 외국인 전용 신용대출을 취급하는 곳은 없었다. 우리나라 고용시장에 외국인이 상당히 많이 들어왔지만 이들을 위한 대안신용평가모형이 개발되지 않아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득수준이나 자격요건이 우량해도 외국인은 한계가 있다"면서 "본국에 돌아가는 등 여신 부실에 대한 리스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아직 신파일러 대출도 어려운데 주택담보대출 등과 다르게 외국인에게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까지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언제 출국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대출부실 이후 채권추심을 통한 회수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리스크를 감수하고 대출을 취급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거주 외국인이 빠르게 증가하는 데다 우수 외국인 인력 유치에 금융환경이 기여하는 점을 고려할 때 외국인 금융소비자를 위한 대안신용평가모형을 개발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거주 외국인 증가로 새로운 시장이 커지고 있다"면서 "현재 고객 중에 외국인 대출을 받는 추세를 분석하고 외국인 신용도를 측정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어떤 식으로 상품을 설계할지 고민할 시점이 됐다"고 지적했다.

gogosing@fnnews.com 박소현 김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