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 김원용 美옥스버그대학교 경영대학 부교수
지배구조 개선 美·스웨덴 사례 보니
美, 반독점법으로 의사결정 투명성 확대
주주이익 확대 위한 경영자 보상체계도
스웨덴, 세습 등 기업활동 자유 보장하되
경영 이익 고용에 재투자·사회환원 유도
소유·경영 분리 어려운 韓기업 특성 고려
안정적 승계 위한 상속세율 개편은 필요
주주권리 보호할 정책 도입 확대도 필수
보상시스템 투명화… 사회적 저항 줄여야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돼 있다는 것은 지난 2000년대부터 끊임없이 지적돼 왔다.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리는 이 현상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분석이 있었다. 취약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과도한 세금 부담, 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 2월 기업지배구조 개선 및 법인세·상속증여세 등의 개편을 골자로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방안을 밝힌 바 있다.
김원용 교수는 현재 미국 미네소타주 소재 옥스버그대학교 경영대학에서 재무담당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미국 드렉셀대학교에서 한국 재벌기업의 경영자 보상체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기업지배구조, 경영자 보상, ESG 등의 분야에서 연구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은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는 사항이다. 지난 수십년간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온 한국 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는 소위 재벌 체제라는 소수의 가족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성장이라는 특수한 역사에서 그 문제가 기인하고 있다. 대기업 중심 경제발전 정책은 효율적 자원분배를 통해 집중적 성장을 가능케 한 순기능과 함께 족벌 경영체제라는 문제점도 야기해 왔으며,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한국 경제 및 기업의 취약한 지배구조가 어떻게 커다란 문제를 가져오는지도 보여준 바 있다.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발전을 가져온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개선돼야 할 점이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스웨덴의 사례를 통해 한국 현실에 맞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책은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보고자 한다.
■미국, 채찍을 통한 강제분할과 처벌
세계에서 가장 주주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 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 역시 자본주의 발전 초창기에는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갖은 편법, 불법이 난무했다. 문어발식 족벌경영이 만연했고 거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함으로써 독점기업의 지위를 확보하고 그 과실을 향유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기였다.
이러한 미국 시장에 커다란 사건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반독점법(Antitrust Law)' 등장이다. 1890년 셔먼법(Sherman Act)으로 일컬어지는 반독점법은 '여러 주 간 또는 외국과의 거래 또는 통상을 제한하는 모든 계약, 트러스트 등의 형태의 결합, 공모는 위법이다'라고 아주 광범위하게 기업의 독점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1914년 연방의회는 클레이튼법과 연방거래위원회법이라는 두 가지 연방법을 더 통과시켰는데 이 법들로 인해 독점행위에 관해 감시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출범했다. 또 주 검찰총장이 연방 독점행위에 대해서도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등 독점행위에 대한 적발 및 처벌을 크게 강화했다.
반독점법으로 가장 타격을 입은 기업들은 다름아닌 독점 족벌기업들이었는데 대표적인 곳이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1911년 최초로 스탠더드오일을 독점적 지위를 가졌다는 이유로 38개 기업으로 분할했고 통신회사인 벨, 담배회사였던 아메리칸토바코, 방송사인 NBC 등이 이러한 조치로 인해 강제분할됐다. 이에 따라 한 개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가 투명해졌고 공정한 경쟁을 통한 시장의 최적화라는 자본주의 경제의 대원칙을 실현해 나갔다.
반독점법과 더불어 미국 기업지배구조의 획기적인 전환을 이뤄낸 것이 주주권 신장을 위한 제도들이다.
반독점법 등을 통해 소유와 경영이 대체로 분리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새로운 기업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등의 성과는 동시에 소위 '대리인 문제'라고 하는 소유·경영 분리의 대표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주식회사의 경우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을 위해 경영자가 최선을 다해 헌신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 우위를 지닌 경영자들은 주주가치의 극대화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먼저 복무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를 대리인 문제라고 하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주주들은 경영자 보상체계를 최대한 주주의 이익과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 성과급, 스톡옵션과 같은 주식기준보상 체계이다. 문제는 이러한 보상체계가 어느 정도 대리인 문제에 의한 비용을 상쇄시켜주긴 하지만, 정보의 비대칭성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1980년대 말부터 불어온 소위 친기업 정책(Pro-business policy)의 실상은 기업의 주인인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한다기보다는 경영자의 자리를 지켜주는 방식으로 실현되어 갔다.
대표적인 정책이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과 '황금낙하산(골든 패러슈트)'이다. 경영자는 스톡옵션과 같이 주가상승을 강하게 추구하게 하는 보상체계 속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 결과가 엔론 사태로 대표되는 회계부정 사건이다. 당시 많은 언론은 스톡옵션과 같은 주식기준 보상체계가 회계부정을 가져왔다고 지적했으나, 이는 한면만 바라본 분석이라 생각된다. 정보 비대칭성을 최소화하고 상시적으로 경영자를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면 아무리 스톡옵션을 가진 경영자라 할지라도 회계부정을 통해 자신의 부를 극대화하려 노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국 의회와 정부는 이러한 점을 간파하고 지난 2002년 상장회사의 공시의무를 대폭 강화한 사베인스·옥슬리법(SOX)을 제정했다. 이렇듯 미국의 경우 반독점법과 주주권 증진을 위한 각종 법령 및 감시 시스템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해 왔고, 이를 어길 시 민형사상 강력한 처벌을 함으로써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을 위해 복무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확립해왔다.
■스웨덴, 사회적 대타협 통한 기업 지배구조 투명화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원칙이 작동하는 미국과 달리 스웨덴은 소유한 가문이 경영에 참여하고 그 경영권이 세습되는 형식의 기업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스웨덴의 대표적 기업인 발렌베리 그룹은 1857년 설립되어 160여년 동안 6대에 걸쳐 기업의 경영권이 세습되어 왔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의 많은 가족중심 족벌 기업과 달리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
스웨덴 역시 여타 다른 자본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1920년대까지 극심한 사회갈등을 겪었다. 특히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의 그림자가 전 세계 경제를 불황의 늪으로 이끌었고, 스웨덴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932년 집권한 사회민주당 정권은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사정 간 사회적 대타협을 추구했다. 골자는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은 철저히 보장하는 대신 기업에서 발생한 부가 개인에게 흘러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높은 세금을 부과, 기업이 발생한 부를 개인에게 분배하는 대신 재투자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기업활동의 자유는 보장하나 동시에 고용과 투자가 확대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스웨덴 사회적 대타협의 목표이다. 스웨덴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선진형 복지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스웨덴의 대표기업 발렌베리 그룹은 6대째 그 기업이 세습됨에도 불구하고 가문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경영자의 전횡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일단 발렌베리 그룹은 장자와 가문에서 가장 능력을 인정받은 후계자가 투톱으로 그룹을 이끌어 나간다. 1인 지배체제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또한 발렌베리 그룹은 가문 내 개인들이 아닌 공익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소유는 하지 않지만 재단을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의사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공익재단은 국가와 사회의 감시를 받고, 이를 통해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투명성을 보장받는다는 것이 이 제도의 핵심이다.
이러한 체제를 가능케 한 결정적 요인 중 하나가 발렌베리 재단이 지주회사 지분을 상당히 가지고 있고, 또한 차등의결권 제도를 통해 90%에 육박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신 발렌베리 재단은 이익의 85%를 법인세를 통해 환원하고, 그 외에도 각종 기부활동을 통해 기업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한국의 선택은?
위 두 나라의 예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각 사회의 특성에 따라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다른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미국이 강제적인 제도와 그에 따른 강력한 처벌을 통해 이를 실현하려 했다면, 스웨덴은 기업의 경영권과 그의 세습을 철저히 보장하는 대신 거기서 발생하는 부를 대부분 사회로 환원하는 형태로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증진해왔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외부로부터의 강제적 조정을 통해 기업지배구조 변화를 요구받아 왔다. 어찌 보면 미국에서 보여진 형태의 강제성을 통한 발전을 도모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한국 재벌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강제적 변화는 그 한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 재벌 가문의 가장 큰 관심은 아마도 경영권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안정적으로 전달할 것인가가 아닌가 싶다. 정부는 상속증여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의 한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크게 봐서는 틀리지 않았고 필요하다고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당근에 대한 대가가 어떻게 지불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실제 정부는 상속증여세율 인하와 더불어 각종 기업지배구조 개선책을 함께 내놓았으나 기업들의 반응은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
기업승계를 위한 세제개선은 필요하지만 몇 가지 전제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주주권 신장을 위한 제도적 기틀이 마련돼야 한다. 한국도 사전 공시제도 등은 잘 갖춰져 있지만 여전히 경영자가 주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게 현실이다.
둘째, 가족기업이 솔선수범해 능력 위주의 기업승계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한국 가족기업은 혈연관계가 기업승계에 있어서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외국 유수의 가족기업은 직계 자녀뿐 아니라 다음 세대 방계들에게도 그 기회가 열려 있어 능력 있는 가족 구성원이 최고경영자가 될 확률을 더 높인다. 경쟁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더욱 향상시키려는 동인 역시 이러한 승계풀의 확장에서 가져올 수 있는 효과이다.
셋째, 경영자 보상 시스템을 투명화해야 한다. 미국은 가족기업의 가족 출신 최고경영자는 전문경영인에 비해 더 적은 보수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많은 보수를 지불하고 고용해야 하는 전문경영인에 비해 가족 경영인은 많은 보수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체계의 투명성 확립은 사회적으로 기업승계에 대한 저항을 줄임과 동시에 투자자에게도 좋은 투자의 동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전제조건하에 세제개선 등을 통해 기업 경영에 있어서 승계에 관한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한 부분을 해소하게 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한미재무학회(KAFA)는 지난 1991년 미주지역 재무 연구자들의 학술적 발전 및 상호교류 증진을 목적으로 발족한 학술단체다. 30여년간 발전을 거듭해 현재 미주는 물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과 유럽·호주 지역 한인 연구자들의 모임으로 발전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2007년부터 한미재무학회의 학문적 성취를 장려하기 위해 KAFA를 후원하고 있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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