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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이사 충실의무' 논란, 주주·기업 윈윈 방안 찾아야

경제단체 "경영 위축, 소송 남발···"
기업인 발 묶는 과잉규제는 안 돼

[fn사설] '이사 충실의무' 논란, 주주·기업 윈윈 방안 찾아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상법개정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경제단체들이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에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 24일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8개 경제단체는 정부와 국회에 공동건의서를 제출했다. 정부는 기업 밸류업의 하나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현행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현행 상법상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추가하는 게 핵심인데, 그 파급력은 상당하다. 주주들이 반기는 가운데 학계에서도 대체로 긍정적인 견해를 보이자, 경제단체들이 이례적으로 공동건의서까지 내 방어에 나선 것이다. 거대 야당도 상법 개정에 우호적이다.

경제단체가 개정에 반대하는 큰 이유는 법 체계를 훼손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배임죄 고발, 손해배상 소송과 같은 사법 리스크도 걱정한다. 자본조달, 인수합병(M&A) 등 통상적 경영활동마저 위축시켜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충실의무를 확대해석해 글로벌 행동주의펀드의 경영권 위협이 늘어날 수 있다고도 한다. 차등의결권과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이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상법 개정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것이다. 경제단체에 따르면 행동주의펀드가 겨냥하는 우리 기업은 지난해 77곳으로 4년 새 10배가량 늘었다.

경영 불확실성 가중, 민형사 소송 남발 등 개정안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소송이 늘면 기업인의 신속하고 과감한 경영판단을 가로막을 수 있다. 경영권을 공격하는 세력에 대한 견제장치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 상법·형법 등에서 이사의 주의 충실의무를 규정해 처벌하고 있는 상황인데 개정안은 도전적 신규 투자 등 기업가정신을 훼손하는 과잉처벌이 될 수 있다.

상법 개정 취지는 주주들의 권한을 강화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실효성이 명확해야 한다. 효율적인 시장 감시체계와 함께 균형적 방안이 따라야 한다. 이사 책임이 과도하게 확대해석되지 않도록 명확한 원칙도 요구된다. 밸류업 우수기업 인센티브, 상속세 인하 등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하는 장치도 필요하다.

밸류업 차원에서 중요한 주체인 주주 이익이 강화되고,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선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지배주주의 지배권 강화를 위한 계열사 합병, 물적분할 후 중복상장(쪼개기 상장) 등 기업가치와 반대로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관행이 빈번했다. 주주이익을 보호하는 상법 개정을 기업이 자초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금융당국은 뒤늦게 2022년부터 오너 일가의 무분별한 물적분할을 규제하는 투자자 보호장치를 가동 중이다.

그러나 주주의 권익만큼 기업의 경영권도 소중한 가치다.
밸류업은 기업과 주주 모두 윈윈하는 구조여야 함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해충돌이 발생하는 합병 등과 같은 사안에 한해 주주 충실의무를 구체화하거나 손해배상 등 책임을 명시하자는 학계의 의견도 검토해 볼 만하다. 더 깊은 숙의로 두 주체를 공히 존중하면서 법적 허점이 없도록 보완장치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