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햄릿이 주는 교훈 [기자수첩]

햄릿이 주는 교훈 [기자수첩]

[파이낸셜뉴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처음 햄릿의 이 명대사를 접했던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그땐 막연히 햄릿이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한 나라의 왕자씩이나 되는 인물이, 자기 삶 하나 마음대로 못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유부단함'이 삶의 걸림돌이 아닌 꼭 필요한 가치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기자가 되고 난 이후였다. 세상에는 무 자르듯 쉽게 단정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최근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이 삼성화재를 대상으로 제기한 모방 의혹만 봐도 그랬다.

카카오페이손보는 삼성화재가 개편한 해외여행보험 온라인 상품을 두고 가입 동선부터 페이지별 구성 요소, 디자인, 문구까지 자사 해외여행보험을 똑같이 본땄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삼성화재는 온라인 채널에서 해외여행자보험 판매를 최초로 시작한 것은 자신들이라고 맞섰다. 업계 관계자는 서비스를 운영하다 보면 표현 방식이 유사해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누구의 말도 오답은 아니었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타사의 서비스를 벤치마킹하고 경쟁적으로 유사한 상품을 내놓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당장 한화손보가 지난해 7월 유방암·갑상선암 등 여성암 진단비와 난임관리 등을 지원하는 '시그니처 여성 건강보험'을 출시한 이후 흥국화재와 신한라이프, 롯데손보도 타겟층을 세분화해 관련 보장을 포함한 신상품을 출시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은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상품 선택지가 많아져 고마운 일이다.

반면 뒤집어 생각해보면, 모방이 성행하는 사회에서 과연 누가 발전하기 위해 노력할지는 의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승부를 가르는 것은 '디테일'이다. 하지만 보험업계의 배타적 사용권 취득 현황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조금이라도 독창적인 상품을 만들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독점 판매 기간은 평균 3~6개월, 최대 1년으로 짧은 데다가 기간이 종료되면 유사 상품이 우후죽순 쏟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카카오페이손보와 삼성화재 중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었다.

햄릿은 현명했다. 세상은 정답과 오답이 명백히 존재하는 수학 교과서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우유부단하다고 비난할지언정 '회색지대'에 서서 이쪽에도, 저쪽에도 오고 갈 수 있는 중립적 관점이 보험업계와 기자에게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