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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의료환경 새판 짜야

[강남시선] 의료환경 새판 짜야
정명진 중기벤처부장
"딸이 치료도 못받고 저와 이별할까 봐 내일이 오는 게 두렵고 무섭습니다."

60대 김모씨는 지난 4일 희귀유전질환 코넬리아드랑게증후군을 앓고 있는 20대 딸을 위해 집회에 나섰다. 그는 "의사 선생님이 지금까지 하은이를 살려주셔서 고맙고 감사하다"며 "하지만 앞으로도 의사 선생님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의사들의 휴진철회를 촉구했다.

또 다른 환자는 "뇌종양으로 시신경이 압박을 받아 눈이 잘 보이지 않고 실명될까 불안한 상황인데 수술이 기약 없이 미뤄졌다. 절박한 심정에 참석했다"고 호소했다.

의대 증원과 관련해 지난 2월 20일 전공의 파업이 시작된 지 약 5개월이 되면서 환자들도 인내심이 바닥났다. 아직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쯤이면 의료환경이 정상화돼도 모자랄 시점인데 대학병원 교수들이 순차적으로 휴진을 강행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제 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엄습하고 있다.

환자단체들은 정부와 의사, 양쪽 다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환자와 환자 보호자들은 마음을 졸이면서 병원에서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이들이다.

환자단체들은 "환자와 환자 가족, 그리고 국민은 무책임한 정부와 무자비한 전공의·의대 교수의 힘겨루기를 지켜보며 분노와 불안, 무기력에 빠졌다"며 "정부와 전공의, 의대 교수들은 수련병원의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의대 증원 사태 이전에는 전공의의 경우 힘든 수련 과정을 전문의가 될 수 있는 기회의 비용으로 받아들였을 것이고, 선배 의사들은 나도 했던 일인데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의대 증원 이후 내 노동력이 4~5년간 착취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제 전공의들은 정부와 의협 양측에 모두 반응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복귀한 전공의가 전문의 자격을 차질 없이 취득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지원하겠다며 복귀를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전공의 1만3756명 중 8%인 1104명만 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의료계는 범의료계 특위인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위'(올특위)를 출범시키면서 전공의와 의대생을 포함하려 했지만 아무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8일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들에 대한 최종 결단을 내릴 전망이다. '전공의 임용시험 지침'에 따라 9월 1일 수련을 시작하는 인턴과 레지던트가 선발되므로 7월 중순까지는 모집 대상과 일정 등을 확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2025학년도 입시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당장 8~9일 재외국민 특별전형 원서접수가 시작되고 9월 수시모집, 12월 정시모집 등이 진행된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됐다.

전공의가 마음을 바꿔 돌아온다면 가장 좋겠지만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새판을 짜야 한다.

이제 환자들에게도, 병원들에도 시간이 없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시행하려 했던 목적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필수의료 강화, 지역의료 살리기를 위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 고민할 시점이다.

정부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의대 증원 논의 단계부터 필수의료를 하는 교수들과 논의를 진행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점이다.

대한의사협회 회원 중 의료기관 종사자 11만1861명을 살펴보면 의원이 5만1015명(45.6%)을 차지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2만1347명(19%)인데 이들이 다 필수의료 진료를 하지 않는다.
각 대학병원이 휴진을 하고 있는 지금도 필수의료과 의사들은 쉬지 않고 진료를 이어가는 중이다. 전공의도 없어 체력적으로도 힘든 상황이다.

정부의 의대 증원이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진행됐지만 필수의료과 교수들에게 더 고통만 주고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pompo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