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를 위해 다수 부담 늘어
예보료 인상은 포플리즘
박문수 금융부 기자
24년째 5000만원 그대로인 예금자 보호 한도를 1억원으로 올리면 누가 웃을까. 저축은행 사태나 IMF로 은행이 도산하는 장면을 기억하는 이들이 안도할 수 있다. 예금자 보호 제도가 금융소비자의 자산을 계좌당 1억원까지 지켜준다니 든든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행 보호 한도인 5000만원을 초과하는 예금 계좌는 전체의 2% 미만이다.
소비자들은 이미 은행 도산의 위험을 고려해 전략적 ‘분산 예치’를 하고 있다. 19개 은행과 68개 저축은행 우체국과 새마을금고에 돈을 쪼개서 맡기고 있다. 단순 계산하면 40억원이 넘는 돈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다. 물론 디지털 소외계층이나 '금융 사막'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분산 예치는 번거롭고 어려운 일이다.
한도액 상향 개정은 98% 시민에게 ‘실익’이 없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평균 저축액 규모는 8848만원이다. 이를 가구원 수(2.45명)으로 나누면 1인당 평균 저축액은 3608만원에 불과하다. 가구 소득 상위 20%의 저축액도 2억1050만원에 불과하다. 이를 가구원수로 나누면 4210만원이다. 가구원 수에 청소년이 포함되기에 실제 1인당 저축액은 5000만원을 초과할 수 있다.
문제는 예금 보호 한도가 올라가는 만큼 예금보험료가 오르고, 때문에 전체 소비자의 예금 금리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은행과 저축은행들은 법이 정한 예금보호료를 매년 예금보험공사에 납부한다. 심지어 소멸성 보험이라서 납부한 보험료를 돌려받지도 못한다.
예금자 보호한도 인상, 즉 예보료 인상 논의는 정치권의 주도 속에 탄력을 받고 있다. 큰 틀에서 비슷한 예보료 인상 법안을 여야 모두 발의했다. ‘금융 시장의 불안’에 편승한 포플리즘 법안이다. 2%도 안되는 소수를 위해 98% 이상의 다수가 보다 많은 예보료 부담을 떠안게 된다.
인사청문회를 준비하기 위해 예금보험공사에 출근하는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경제 규모, 금융자산 증가 등을 감안할 때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의 방향성에 공감한다”면서도 “부동산 PF 상황, 저축은행 건전성 동향 등 시장 상황을 봐가며 속도와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청문회를 앞둔 후보자의 정석이다.
방향은 옳지만 시기는 모르겠다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입장이다.
정치가 여론의 등쌀에 못 이겨 포플리즘으로 나아갈 때, 적절히 멈춰 세우는 관료를 보고 싶다. 금융사 단 한 곳의 예금만 고집하는 소수를 위해 내 예보료 부담이 늘어난다면 달갑지 않다.
mj@fnnews.com 박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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