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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우물 안 개구리

[기자수첩] 우물 안 개구리
권준호 산업부

"매국노. 천하의 쓰레기. 그냥 중국으로 가라."

전기차 산업 관련 중국 업체 기사를 쓰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온라인 댓글이다. 몇몇 독자들은 "한국 기자가 돼서 중국 편을 드는 기사를 쓴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2년여 동안 담당했던 배터리 기사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관련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욕설이 담긴 메일을 받은 경험도 있다. 객관적인 지표와 자료를 제시해도 '중국'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욕이 날아오는 상황이 씁쓸하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과 달리 중국이 전기차 시장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현장에서 만나는 전기차 업체 종사자 상당수는 "중국이 정말 무섭게 치고 올라온다"고 말한다. "사실 치고 올라온다는 게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다. 이미 한국을 넘어섰다고 보는 시각도 많다"는 종사자도 있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위 10개 전기차 회사 가운데 중국 제외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률이 가장 높은 곳은 중국의 BYD다. 1~5월 BYD가 기록한 비중국 전기차 인도량은 전년동기 대비 168.8% 급증, 점유율을 2배 이상 키웠다. 반면 22%를 넘던 미국 완성차 업체 테슬라의 점유율은 1년 만에 18%로 떨어졌고, 같은 기간 현대차·기아 점유율도 두자릿수에서 한자릿수로 하락했다.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는 점유율이 더욱 벌어졌다. 해당 지표에서 BYD는 점유율 20.9%로 전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했다. 미국 완성차 업체 테슬라의 점유율은 이보다 9.8%p 뒤진 11.1%다. 지난해 대비 3%p 이상 하락한 수치다. 업계는 중국 업체들이 단순 가격경쟁력뿐만 아니라 기술력에서도 선두그룹과 차이를 줄였다고 분석한다.

심지어 총격사건 후 최근 상승세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면) 중국산 자동차에 최대 200%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중국 자동차 산업이 그만큼 빠르게 성장한다는 방증이다.

물론 이 같은 현실을 외면하고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쓸 수 있다. 하지만 원하는 정보를 어디서든 쉽게 찾는 시대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무의미하다. 더 이상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중국을 무작정 한국 아래로 봐서는 안 된다.

우리가 모두 아는 이솝우화 중에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이야기가 있다.
주인공 개구리가 바다의 존재를 모르고 자신이 사는 우물이 제일 넓은 줄 알고 산다는 동화다. 정확한 현실 파악 없이 단순히 '중국 편을 든다'며 비난한다면 우리도 언제든 개구리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닥치지 않도록 높이 그리고 되도록 멀리 뛰어야 한다.

kjh010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