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국제부장·경제부문장
암살시도와 코로나19. 연관성을 찾기 힘든 두 단어다. 그러나 오는 11월 5일 미국 대선 결과를 놓고 평가할 때 회자될 단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제60대 대통령 후보에서 전격 사퇴했다. 미국 정치판을 구성하고 있는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후보가 스스로 물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상을 아예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설마'라는 생각이 많았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이 주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기에 미국내 반응도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운이 없었던 것 같다. 지난달 TV 대선 토론에서 밀린 것은 만회할 수 있었다. 이후 예정된 TV 토론을 잘 준비하면 된다. 그러나 최근 열흘 동안 벌어진 사건들은, 그만의 노력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지난 13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트럼프 암살사건. 여기서 보여준 트럼프의 행동은 지지자 여부를 떠나 그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특히 사진이 잘 나오기는 했지만 피를 흘리면서도 성조기 앞에서 손을 든 그의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다. 미국 밖에서도 이런 평가가 나오니 미국 현지에서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을 것 같다. 강한 지도자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나흘 뒤인 17일 이번에는 바이든이 소식을 전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요양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바로 선거운동에 복귀하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가뜩이나 고령에 따른 건강과 인지력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약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악재가 겹친 것이다.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지만 하필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총알을 피한 트럼프, 코로나도 못 피한 바이든'이라는 조롱까지 나오기도 했다.
당내외 압박에도 잘 버티던 바이든은 결국 사퇴를 결정했다. "측근들이 그를 줄리어스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로 만들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 바이든 캠프 관계자의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사퇴 결정 이후에도 바이든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할 것 같다.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것은 가족뿐이다.
한때 든든한 우군이던 동료 정치인들은 물론 실리콘밸리 리더들까지 환영 일색이다. "최고의 애국자" "가장 이타적인 행동"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지만 내려오기를 기다렸다는 평가다.
세계 주요국들도 발 빠르게 대처에 나서고 있다.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결정을 존중한다" "그 덕분에 나토는 강력해졌다" 등의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바이든 이후 준비에 나섰다.
당장 대선후보를 잃은 민주당은 더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민주당 바이든·해리스 선거 캠프는 미국 연방선거위원회(FEC)에 제출한 서류를 공식적으로 수정하고 해리스를 대선후보로 선언했다. 바이든이 모은 대선 자금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바이든·해리스 캠페인 계좌에는 약 9600만달러의 자금이 모였다.
대권 잠룡으로 평가받고 있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조시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등도 해리스 지지에 나섰다. 해리스는 상하원 200명에 지지 전화를 돌리며 사실상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사퇴하자마자 바이든이 잊혀진 것이다. 레임덕을 방지하기 위해 "남은 기간 대통령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관심을 갖는 이는 많지 않다.
'만약'이라는 단어만큼 의미가 없는 말은 없다.
불가능한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약 트럼프에 대한 암살 시도가 없었다면, 트럼프가 나약한 모습을 보였어도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아니면 바이든이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았다면, 아니 걸렸어도 나중에 걸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총알과 코로나, 바이든에게는 평생 듣기 싫은 단어가 아닐까 싶다.
kkskim@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