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범 건설부동산부장
"둘째는?" 사석에서 훅 들어온 가족계획 질문에 메말라가는 통장 잔고가 설핏 머리를 스친 적이 있었다. 복잡다단한 생각에 바로 응수하지도 못했다. 이제는 지천명을 넘긴 나이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자의반 타의반으로 고민의 끈을 내려놨지만 둘째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형제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다는 통념은 부모라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맞벌이가 늘어난 현대사회에선 경제적·시간적 여유 등이 자녀계획과 직결된다. 무엇보다 양육비가 만만치 않다. 서울에서 한 자녀를 대학 졸업까지 키우는 데 약 3억2000만원(2020년 기준)이 든다는 통계청의 분석은 부모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4년 전 분석이니 계산기를 다시 두드리면 더 늘었을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근로소득자의 평균 연봉 4214만원(국세청 기준)을 감안하면 일반 직장인이 약 8년간 한 푼도 안 쓰고 꼬박 모아야만 만질 수 있는 돈이다. 생활비, 주택비용 등을 제외하면 정년까지 수십년간 저축해도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 같은 불확실성은 딩크족(맞벌이 무자녀 가정) 신조어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하위로 주저앉은 출산율 0.7명의 그늘과 맞닿아 있다.
지난해 8월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이 전국 15~59세 남녀 2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저출산을 야기하는 사회적 원인으로 절반 이상이 '자녀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52.8%)'을 꼽았다. 국력의 좌표가 되는 인구 문제에서 저출산은 국가재난이다. 기업의 지속 성장과 발전에도 인구위기 해소는 긴요하다. 정부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사회 전체의 전폭적인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과감한 결단은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파격적인 사례로 지금까지 회자될 만하다. 직원 자녀(2021년 이후 출생)에게 1인당 현금 1억원 지급은 전례 없는 출산장려책이다. 침체에 허덕이는 업황에도 불구하고 시공능력 93위 업체가 어느 곳도 엄두를 못 낸 통 큰 행보로 더 빛을 발한다. 부영그룹 신입사원 채용 지원 규모가 기존 대비 5배로 치솟는 등 위상도 달라졌다. 공표 후 5개월이 지났지만, 최근까지도 여러 기업이 유사한 정책을 도입하거나 기존 지원을 확대·강화하는 등 산업계 전반에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출산과 육아 지원을 기업의 지출로 보는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로 보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 회장의 이니셔티브가 기업문화의 새로운 장을 연 셈이다. 한국 기업사에도 남을 일이다. 아울러 출산장려책 확대와 제도화는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이 직간접적으로 가계에 흘러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 이익은 늘고 가계 소득이 정체될 때마다 대두되는 "기업과 가계 간 낙수효과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시각 해소에도 한몫할 것으로 보인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나이지리아 속담처럼 자녀 양육은 부모만의 책임이 아닌 사회 전체의 과제다. 2세를 갖는다는 건 인생의 무한책임을 의미하며, 개인이 온전히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다. 특히 현대인에게 직장은 신념과 가치, 규범 등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준거집단으로 공동체집단의 군락을 뜻하는 마을 개념과 다르지 않다.
기업이 곧 마을인 셈이다. 베이비붐 시대에 살림살이가 팍팍해도 아이를 같이 돌봐주던 이웃의 온정이 든든한 육아파트너가 됐듯이, 인구위기 시대에 기업의 가족친화적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은 정부 저출산 정책에도 믿음직한 조력자이다. 유럽연합(EU)에서 출산율(2021년 기준 1.8명)이 가장 높은 프랑스의 '모든 아이는 국가가 키운다'는 육아정책 기조에 버금가는 강력한 정부 리더십에 기업들의 적극적인 출산장려 낙수효과가 더해진다면 셋째, 넷째 계획을 물어볼 시기도 머지않아 보인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